금융 당국이 지난해 반(反)공매도 운동을 벌였던 개인투자자 단체에 대해 ‘엄중 조치’를 하겠다고 엄포를 놨지만 정작 이와 관련한 조사를 제대로 진행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금융 당국이 소액 투자자들의 집단행동을 일단 막고 보자는 ‘입막음용’ 임시방편 조치에만 급급했던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공매도 제도 개선을 공약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취임 이후 외국인과 기관투자가에게 ‘기울어진 운동장’인 공매도 제도 개선이 이뤄질지 주목된다.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한투연) 대표는 29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지난해 8월 금융 당국이 한투연을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조사하고 엄정 조치할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7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단 한 번의 조사는커녕 관련 자료 제출 요청조차 들어온 적이 없다”고 말했다. 앞서 정 대표는 한투연 회원 1000여명과 함께 지난해 7~8월 반공매도 운동인 ‘K스톱 운동’을 주도했다. 같은 해 미국에서 벌어진 반공매도 운동으로 주가가 급등한 비디오게임 전문회사 ‘게임스톱’ 이름을 본뜬 운동이었다. 당시 한투연은 코스닥시장 공매도 잔액 1위인 에이치엘비에 대한 집단매수에 나섰다. 공매도는 언젠가 갚아야 하는 주식을 미리 빌려서 파는 기법인 만큼 매수세가 형성돼 주가가 오르면 공매도 실행자가 큰 손실을 보게 된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한투연이 공매도 반대 운동에 나서자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한국거래소는 공동으로 보도자료를 내고 한투연을 겨냥해 경고장을 날렸다. 금융 당국은 “특정 종목에 대한 집중매수 운동을 전개함으로써 주가를 끌어올리는 행위는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에 해당할 수 있다”며 “당국은 불공정 거래에 대해 면밀히 감시하고 관련법 위반 시 형사처벌 등 엄정 조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당시 당국은 한투연의 활동 상당 부분이 자본시장법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는 취지로 경고했다.
결국 한투연은 모두 두 차례 계획돼 있던 K스톱 운동을 1차에서 중단했다. 법 위반으로 처벌될 수 있다는 부담감 때문이었다. 금융 당국의 조사가 끝나고 혐의가 없다고 판단되면 재개하기로 했지만 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당국에서는 아무런 조사 요청이나 결과 통보가 없었다는 게 한투연 측의 주장이다. 그 이후로 한투연의 반공매도 운동은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이 때문에 금융 당국이 소액주주들의 공매도 반대 집단운동을 잠재우기 위해 제재를 할 수 없음에도 과장된 조치를 취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당국이 경고했던 대로 엄정 조치를 위한 조사가 실제로 어디까지 진행됐는지는 불분명하다.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이에 대해 “특정 사안에 대한 조사 시작·진행 여부는 공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개인투자자들은 윤 당선인이 공약대로 공매도에 대한 현 정부의 기조를 뒤집고 공매도 제도를 ‘소액주주 친화적’으로 대폭 손질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국민의힘 정책공약집에 따르면 윤 당선인은 ‘공매도 서킷브레이커’를 국내 주식시장에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주가가 과도한 수준으로 하락할 경우 자동으로 발동해 일시적으로 공매도를 전면 금지하는 장치다. 공매도가 주가 하락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는 만큼 개인투자자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목적이다.
불법공매도(무차입공매도) 처벌을 강화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기관들이 주식을 빌려서(차입) 파는 대신 빌리지 않고(무차입) 매도함으로써 이익을 얻는 무차입공매도는 오래전부터 개인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지적을 받아왔지만 아직 이렇다 할 개선책이 나오지 않았다. 윤 당선인은 공매도 전담 감시조직을 신설해 불법행위가 적발될 경우 주가조작에 준하는 수준으로 형사처벌을 가한다는 방침이다.
공약에는 외국인·기관에 비해 불리한 위치에 놓인 개인투자자의 담보 비율을 조정하는 방안도 포함돼 있다. 현재 공매도를 실행하기 위한 담보비율은 개인의 경우 140%에 달하지만 외국인·기관은 105%에 불과하다. 빌린 주식을 상환해야 하는 기간 역시 개인은 90일 제한을 적용받지만 외국인·기관은 사실상 무제한이다. 정 대표는 “개인투자자의 피해를 줄여주기 위한 공매도 개혁 방안이 윤 당선인 공약에 어느 정도 녹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실제 이행 단계에 들어서는지 면밀히 감시한 뒤 진척이 없으면 다시 반공매도 운동을 재개하겠다”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