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올해부터 은행권의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 실태 검사를 상시화한다. 탄소를 많이 배출해 환경을 오염시키는 업종·기업이 지금보다 은행에서 돈을 빌리기 어렵게 하겠다는 방침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30일 “은행권이 ESG와 관련된 여러 사회적 요구와 규제 환경에 잘 대응하는지가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면서 “올해부터 큰 틀에서의 ESG 관련 사항을 상시 점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금감원은 ESG 관련 금융관련 사건·사고가 발생하는 등 사안이 있을 때만 개별적으로 검사해왔다.
ESG에는 기후 변화 대응, 노동 관행 개선, 회계·공시 투명성 강화 등이 포함된다. 우선적인 초점은 환경 분야에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으로는 석탄 발전소와 같은 고탄소 배출 업종·기업의 신규 대출을 중단하게 하거나 익스포저(대출 위험도)를 낮추는 방식이 유력하다. 금감원이 개별 금융사를 대상으로 실시하는 경영 실태 평가에서 ESG 관련 대응 체계 현황을 확인하거나 업종·기업별 익스포저를 서면으로 받은 뒤 검사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은행장 등 임원 간담회나 개별 면담에서 구두로 지도하는 형태가 될 수도 있다. ESG 검사는 금감원 감독총괄국(지속가능금융팀)과 일반은행검사국(상시감시팀) 등이 나눠 맡을 것으로 보인다.
ESG 검사는 은행 건전성 유지 차원에서도 의미가 있다. 은행이 ESG에 맞지 않는 업종·기업에 대출금을 내줬다가 돈을 회수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앞으로 석탄 발전 수요가 계속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에서 실적이 나빠질 발전소에 돈을 빌려줄 경우 해당 은행의 건전성 악화가 우려되므로 금감원이 이를 막겠다고 나선 셈이다. 금감원은 ESG 검사가 은행권에 자리를 잡으면 시중 자금이 고탄소 배출 업종·기업에 흘러 들어가지 않게 돼 ‘친환경 구조조정’이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는 은행 감독 분야의 세계적인 흐름이기도 하다. 전 세계 은행을 감독하는 바젤은행감독위원회(BCBS)는 기후 위기를 금융 감독에 적용하기 위한 국제 기준을 만드는데 고탄소 등 ESG 흐름에 역행하는 업종·기업 대출금이 많은 은행의 경우 자본금을 더 많이 쌓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신용평가사·회계법인 등이 은행의 ESG 채권 발행, 자금 운용 등을 평가하는 민간 가이드라인 등을 내놓고 있지만 검사·감독권을 지닌 금감원이 직접 나서는 것은 무게감이 다르다는 것이 금융권의 평가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권에서도 ESG가 화두로 떠오른 상태지만 일부 은행이 환경 오염 업종·기업을 친환경인 것처럼 포장해 대출금을 내주는 ‘그린 워싱’ 사례가 발생해 논란이 된 적도 있다”면서 “금감원 검사가 상시화하거나 자본금 규제가 생기는 등 제도적인 압박이 더해진다면 파급효과가 상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욱 기자 real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