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불법·비리는 단죄하되 코드맞추기 수사는 안 된다

입력 2022-03-30 04:03
검찰이 ‘산업통상자원부 블랙리스트’ 사건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3년2개월 동안 수사를 하지 않더니 갑자기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현 정권 눈치보느라 수사를 뭉갠 것도 비정상이었지만, 정권이 바뀐다고 갑자기 수사를 시작한 것도 선의로 해석되지 않는다. 둘 다 본질적으로는 정권 눈치보기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산업부 블랙리스트 사건은 문재인정부 출범 직후 산업부 고위직이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한국전력 산하 발전사 4곳 사장 사퇴를 종용했다는 내용이다. 결국 사장들은 모두 임기를 남긴 채 사임했다. 이 사건은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 박근혜정부의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과 구조가 비슷하다. 두 사건 모두 관련자들의 유죄가 확정됐으니, 무리한 수사는 아닐 것이다. 검찰이 신속한 수사를 통해 규명할 필요가 있다.

걱정스러운 것은 수사의 의도다. 문재인정부는 집권 기간 검찰개혁이라는 명분으로 정권에 불리한 수사를 막았다. 친정부 성향의 검사들이 총대를 멨다. 울산시장 선거 공작, 월성 1호기 경제성 조작, 라임·옵티머스 펀드 사기, 김학의 전 법무차관 불법 출국 금지 수사 등이 축소됐거나 하염없이 늘어졌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터진 대장동 비리 의혹 사건 수사는 부실수사의 대표 격이었다.

그런데 대선이 끝나자마자 묵혀놨던 수사가 빨라진다. 정치적 논란이 나올 수밖에 없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문 정권 검찰총장 출신이다. 내로남불 수사에 저항하다가 쫓겨나와 야당 대선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윤 당선인은 선거 기간 정치 보복 발언,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폐지 공약 등으로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많은 국민이 윤석열정부가 제2의 적폐청산 정부가 될 것이라고 걱정하고 있다. 정당한 수사에 정치보복이라는 프레임을 덮어씌워서는 안 된다. 법과 원칙에 따라 불법과 비리는 단죄해야 한다. 그러나 정권 비위를 맞추는 수사, 전 정권 인사만을 겨냥한 수사, 180도로 돌변한 수사는 검찰 독립을 저해하는 행위일 뿐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또 다른 코드맞추기가 아니라 검찰의 정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