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돈’으로 불리는 정부 예산이 있다. 영수증 없이 쓸 수 있는 특수활동비다. 특활비는 정보, 사건 수사와 이에 준하는 국정 수행을 하는 데 드는 비용이다. 기획재정부가 발간한 ‘예산 및 기금 운영계획 지침’엔 특활비 집행은 취지에 맞게 투명성을 제고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유명무실하다.
본예산 기준 지난해 특활비는 전년 대비 4.4% 증가한 9844억원이다. 국가정보원 특활비가 7460억원으로 가장 많고, 국방부(1145억원) 경찰청(718억원) 법무부(155억원) 등의 순이었다. 청와대의 경우 대통령비서실·국가안보실에 86억8000여만원, 대통령경호처에 71억여원이 배정됐다.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의 의상비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김 여사가 청와대 특활비로 고가의 액세서리와 의상을 구입했다는 게 논란의 핵심이다. 여권은 노무현 대통령을 비극으로 몰고 간 ‘논두렁 시계’의 재판이라며 격하게 반발하고 있으나 청와대가 ‘김 여사 의전비용을 공개하라’는 1심 법원의 판결에 불복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특활비는 내역 공개로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치거나 관련인의 신변보호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경우 공개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김 여사 의상비가 여기에 해당하는지는 의문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 초 대통령 가족의 생활비를 봉급으로 충당하겠다며 청와대 특활비를 줄이라고 지시한 바 있다. 당시 청와대도 브리핑을 통해 “대통령 공식행사를 제외한 가족 식사비용, 사적 비품 구입은 예산 지원을 전면 중단한다”고 강조했었다.
대통령 부인도 대통령 못지않게 수많은 대내외 행사를 소화한다. 행사의 격에 맞는 의상과 액세서리 착용은 불가피하다. 국빈행사의 경우 더욱 그렇다. 아무리 억대 연봉을 받는 대통령이라도 이에 필요한 모든 의상과 액세서리를 사비로 구입하는 건 무리다. 국고 지원 내역을 공개하면 문제가 깔끔하게 정리될 텐데 청와대는 그럴 생각이 없는 듯하다. ‘사비로 구입했다’는 청와대 해명을 믿을 국민이 얼마나 될까.
이흥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