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근무할 때와 퇴근 후 정체성이 다르고 SNS를 할 때와 일상의 정체성이 다르다. 분리된 정체성을 갖게 된 현대인들의 ‘나 자신’은 이제 단수가 아닌 복수가 됐다. 서울대 김난도 교수는 2020년 소비 트렌드를 정리한 ‘2021 트렌드코리아’에서 이를 ‘멀티 페르소나’라 했다. 최근엔 주캐릭터(주캐)와 부캐릭터(부캐)라는 용어로 부르기 시작했다. 이는 교회에서도 나타났다. 기독교인 역시 하나의 교회가 아닌, 여러 교회에서 주캐와 부캐로 활동한다.
노마드 신자…주캐·부캐가 되다
은준관 실천신학대학원대 전 총장은 일찌감치 ‘영적이지만 종교적이지는 않은 세대’의 등장을 예고했다. 2014년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 목회자들의 친목 모임인 강남포럼에서 ‘가나안 신자’(신앙은 있지만 교회 출석은 하지 않는 신자), ‘노마드 신자’(유목민처럼 교회를 옮겨 다니는 이들), ‘스타벅스 신자’(교회 근처 카페에서 인터넷으로 예배하는 이들)로 구분했다.
미국 크리스채너티투데이는 팬데믹이 발생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2020년 여름 미국의 기독교인 3명 중 1명 이상은 자신이 등록된 교회가 아닌 다른 교회에서 온라인 예배를 드렸다고 했다. 그러면서 기독교 여론조사기관인 바나그룹 조사 내용을 인용해 코로나 이전부터 이 같은 현상은 있었다고도 했다. 2019년 성도 5명 중 2명은 등록하지 않은 교회에 갔다. 노마드 신자였다. 이 같은 현상의 중심에 온라인이 있었다.
김병삼 만나교회 목사는 “‘주캐’ ‘부캐’처럼 교인 한 사람이 2~3개 교회를 등록하는 시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코로나 이전에는 주캐 부캐라는 용어 대신 노마드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코로나가 이를 수면 위로 올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웨스트게이트교회 제이 김 목사도 자신의 책 ‘아날로그 크리스천’을 통해 “많은 기독교인이 코로나19로 대면예배와 온라인예배 사이에서 불안정한 균형을 탐색하고 있고, 이들 중 일부는 교회나 교단을 변경하려 한다”며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여러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들도 나타났다”고 진단했다.
기독교인들은 등록한 교회에선 주캐, 등록하지 않은 교회에선 부캐로 활동했다. 코로나가 터지기 직전 결혼한 김정현(41)씨도 경기도 고양시 일산 A교회 예배엔 주캐로 참석한다. 이 교회는 부모님과 함께 어릴 때부터 다녔다. 출석 성도로도 등록했다.
그러다 위례신도시로 신혼집을 마련한 뒤 고민에 빠졌다. 40㎞ 정도 떨어진 교회에 가는 데 족히 한 시간은 걸렸다. 점점 교회 예배에 빠지는 빈도가 늘던 중 코로나 상황이 왔다. 유튜브로 예배를 드리던 중 김씨는 알고리즘으로 연결된 다른 교회 예배도 보게 됐다. 최근엔 유튜브로 알게 된 신혼집 인근 교회를 찾았다. 다만 이 교회는 성도로 등록하지는 않고 주일에 아내와 조용히 예배만 드린다.
주캐도 부캐도 모두 성도
코로나 전까지 목회자들은 노마드 신자가 떠돌지 않고 교회에 정착하는 방법을 고민했다. 그러나 코로나 이후 분위기는 달라졌다. 그들이 온라인 예배로 교회를 옮길 것을 고민하기 전에 주캐·부캐 신자 모두에게 복음을 전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목사는 “온라인 예배를 경험한 상황에서 교회는 주캐와 부캐를 막을 수 없는 시대를 맞았다”며 “최근 젊은 목회자들에게는 이를 적극 활용하는 방법을 고민해보라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캐와 부캐를 선택하게 된 기독교인들의 특성부터 살펴야 한다. 이들은 진리나 대안을 찾으려고 교회를 떠났거나 교회에서 상처를 받아 노마드 삶을 선택했다.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특성은 유사했다. 교회 안에서 익명성을 원했고 한 교회에서 다른 교회로 수평 이동했다.
성도 200명 규모의 B교회 C목사는 노마드 신자를 만든 건 한국교회의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한국교회가 교회를 떠난 성도들의 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는 얘기다. 그는 “부흥회에 아무리 유명한 강사를 초청해도 잘 안 되는 시대다. 온라인으로도 충분히 좋은 말씀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라며 “목사 설교 때문에 교회를 떠났다는 건 진짜 이유는 아니다”라고 했다.
김 목사도 “지금은 어떤 목사가 설교를 잘하고 어느 교회가 시설이 좋은지 중요한 게 아니라, 목자와 교인, 교인과 교인 간 관계성이 얼마나 좋으냐에 있다”면서 “교회를 찾는 사람들은 관계의 갈급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은데 교회가 이를 회복시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전했다. 온·오프라인을 구분하기보다 관계성의 갈급함을 갖고 교회를 찾는 이들을 회복시키는 데 온·오프라인을 지혜롭게 활용하자는 말이다.
B교회는 성도들과의 관계에 주목해 온라인으로 소그룹 활동을 이어가며 관계 회복에 주력했다. 덕분에 교회 성도는 지난해보다 두 배로 늘었다.
김 목사는 “몸이 좋지 않아 3개월간 설교를 다른 목사에게 부탁한 적이 있는데 교인이 줄어드는 현상이 발생했다”며 “젊은 교인에게 왜 나오지 않느냐 물었더니 ‘유명 목사의 설교는 어디서나 들을 수 있다. 우리가 필요한 건 목자’라는 답을 하더라. 온라인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건 진정한 목자였다”고 말했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