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등포구의 한 대형 요양병원에 80대 어머니를 입원시킨 A씨(50)는 지난주 병원 측으로부터 “최근 병원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대거 발생했다”며 “어머니도 확진될 것 같으니 추후 관련 연락을 받아도 놀라지 말라”는 안내를 받았다. A씨는 거동이 불편해 중증환자로 치료를 받는 어머니가 걱정돼 ‘확진자와 격리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병원 측은 “병원 내 확진자가 너무 많이 나와 별도의 격리 공간을 마련하기 어렵다”면서 “어차피 전부 걸릴 것 같고, 모든 환자가 걸려야 상황이 끝난다”고 답했다.
결국 A씨는 사흘 뒤인 지난 25일 병원으로부터 어머니의 확진 소식을 들었다. A씨는 “기저질환자가 사망하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는데,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하고 어머니의 확진 소식이 오기만 기다리는 게 정상적인 상황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28일 영등포구에 따르면 이 요양병원은 이날 0시 기준 약 600명의 입소자 중 환자 134명, 간병인 48명 등 182명이 확진됐다. 지난 23일 하루 동안에만 49명의 확진자가 발생하는 등 병원 내 확산세가 매우 강한 상황이다.
요양병원·시설 집단감염은 이곳의 상황만은 아니다. 이날 기준 서울에서만 병원과 요양시설에서 발생한 확진자는 185명으로 집계됐다. 인천 요양병원과 요양원 3곳에서도 187명이 신규 집단감염됐고, 또 기존에 집단감염이 발생한 6곳의 요양병원 및 요양원에서도 902명이 확진됐다.
고령자가 모여 있는 요양병원은 별도의 격리 공간을 마련하지 못하자 자구책으로 ‘관리 가능한 집단감염’을 목표로 해당 층 코호트(동일집단) 격리를 시행 중이다. 외부에서 확진자가 발생한 층으로의 접근을 차단한다는 코호트 격리 조치에는 문제가 없지만 해당 층에는 미확진자가 확진자와 뒤섞여 있는 상황이다.
경기도 파주의 한 요양병원에서는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60만명대를 기록한 지난 16일 4개 층 가운데 노인병동으로 사용하던 1개 층을 코호트 격리했다. 확진자 격리공간이 부족해 확진자 격리는 이뤄지지 않았다. 해당 층 전원감염이 불보듯 뻔한 상황이었다.
병원 관계자는 “확진자가 병원 내에서 한두 명만 나올 때는 병실 분리를 통해 추가 확산을 막을 수 있었지만 최근 매일 10여명씩 무더기로 나오다 보니 분리 자체가 무의미해졌다”면서 “같은 층 미확진자도 확진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병원 입원환자 100명 중 50~60%가 감염됐고, 직원들도 절반 가까이 감염됐지만 다행히 조기에 확진자 처방을 시행해 사망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방역 당국은 먹는 치료제를 최대한 빠르게 처방하는 방안 외에는 별다른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서울시는 관내 25개 자치구 요양병원을 대상으로 코호트 격리 여부에 대한 현황 파악에 들어갔지만 확진자 수가 워낙 많아 파악조차 빠르게 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병상 확보 여력에 따라 요양병원의 대처도 제각각이어서 정확히 어떻게 감염 확산 조치를 하고 있는지도 실시간 모니터링이 어렵다”고 토로했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병상 및 격리공간 부족으로 요양병원 차원에서 추가 확진을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조처가 없는 상황”이라며 “요양병원에서 미확진자에게도 항체치료제를 선제적으로 처방하는 식의 대응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성필 이형민 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