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움 히어로즈는 2019년 한국시리즈에서 아쉽게 패한 이래 매년 가을야구 단골손님으로 만족해야 했다. 지난해 역시 소속 선수들의 음주운전과 술판 파문 등 사건·사고 와중에도 70승67패7무 5위로 SSG 랜더스를 제치고 와일드카드전에 진출했다. 두산 베어스를 상대로 1차전 역전승을 거두며 사상 첫 와일드카드 업셋을 눈앞에 뒀으나 2차전 패배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키움의 스토브리그는 투타 핵심의 이탈과 함께 시끌벅적했다. 팀을 상징했던 거포 박병호가 FA C등급을 받고 KT 위즈로 이적하면서 팬들이 홈구장 등에서 트럭시위를 펼쳤다. 도쿄올림픽 대표팀에 승선해 병역 혜택을 기대했던 마무리 조상우는 대표팀이 노메달에 그쳐 결국 지난 24일 입대했다. 메이저리그(MLB)에서 류현진 동료로 활약했던 역대급 ‘빅네임’ 야시엘 푸이그를 영입해 팀 타선에 무게감을 더하고자 했고, 방출 내야수 강민국과 외야수 김준완을 데려와 뎁스를 강화했다. 들고 난 전력이 많지 않지만 뚜렷하게 약점을 메울 수 있는 움직임은 없었다.
선발진은 KBO리그에서 4시즌째를 맞은 에이스 요키시가 올해도 중심을 잡는다. 야구 외 이슈들만 아니었으면 차세대 리그 에이스로 부각됐을 안우진이 확실한 토종 1선발로 안착할지도 관심사다. 다채로운 구종과 제구가 강점인 새 외인 투수 타일러 애플러만 제 몫을 해준다면 영건 최원태와 베테랑 5선발 정찬헌으로 이어지는 선발 로테이션은 이번 시즌 키움 전력에서 가장 변수가 적은 포지션이 될 전망이다.
클로저 조상우가 군 입대로 이탈한 불펜은 다소 물음표가 많다. 일단 지난 시즌 커리어 하이를 기록하며 후반기 마무리 역할도 경험한 김태훈이 조상우 공백을 확실히 메워줄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김태훈 앞에는 젊은 좌완 김재웅이 셋업맨으로 나선다. 시범경기에서 4경기 평균자책점 1.29로 깜짝 활약을 펼치고 있는 신예 잠수함 노운현이 ‘비밀병기’로 급부상하고 있다. 리그 내 가장 낮은 릴리즈포인트에 독특한 투구폼으로 타이밍을 뺏으며 120㎞대 직구를 마구처럼 뿌린다. 장재영과 이승호 등 젊은 강속구 불펜들 사이에서 시즌 중 복귀가 예상되는 한현희가 무게 중심을 잡아 줄 필요가 있다.
이들과 배터리로 호흡을 맞출 포수진은 박동원과 이지영이 든든하게 버틴다. 지난해 22개 홈런을 쏘아 올리며 장타 본능을 뽐내는 박동원과 정교한 타격으로 매년 3할에 가까운 타격을 보여주는 이지영이 상호 보완제로 투수진을 이끌 전망이다.
야수쪽에선 내·외야 전력 불균형과 수비 불안 해소가 과제다. 이용규 김혜성 이정후로 구성된 국가대표급 상위타선은 올해도 상대팀을 압박할 선제카드다. 골든글러브 출신 이정후와 이용규, 푸이그가 나서는 외야진 역시 이름값에서 전 구단 탑급이다. 시범경기 빈타에 시달리는 푸이그의 리그 적응이 변수긴 하지만 전반적인 공수 밸런스는 나쁘지 않다. 푸이그가 지명타자로 나설 경우 박찬혁 예진원 등도 외야 한자리를 커버할 수 있다.
문제는 이번 시즌 2루로 포지션을 변경한 리드오프 김혜성 외에 확고한 주전이 없는 내야다. 일단 타격에서 강점을 보이는 3루 송성문과 1루 김웅빈이 시즌 초반 기회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시범경기 6할이 넘는 타율로 눈길을 사로잡은 전병우가 전천후 유틸리티 플레이어로 내야 공백을 메운다. 유격수 자리는 2001년생 신준우를 필두로 김휘집, 강민국 등이 경쟁 구도를 형성할 가능성이 높다. 어떤 조합이 최선으로 자리 잡든 전 구단 실책 1위(129개)를 기록했던 지난해 수비 불안을 반복해선 안 된다.
시즌 중 연이은 잡음과 핵심 선수 이탈로 민심을 잃은 키움은 개막을 앞두고 ‘음주 삼진아웃’ 강정호와 무리하게 계약을 체결하며 또 한 번 지탄을 받았다. 구단 재정 상황상 내년 시즌 종료 후 포스팅 자격을 얻게 되는 이정후 이탈을 염두에 둔 움직임으로 보인다. 아직 시범경기지만 전날까지 팀 타율 최하위(2할9리)로 8연패에 몰린 키움은 28일 KT전에서도 빈공에 시달리며 0대 0 무승부를 기록,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뿔난 팬심을 되돌리기 위해서는 더 이상의 사건·사고도 없어야 하지만 일단 성적을 내야 한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