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전 세계의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분야 ‘톱10’ 성장률이 50%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반도체 시장 가운데 가장 가파른 성장세다. 하지만 팹리스 시장에서 한국의 비중은 1.5%에 그쳤다. 메모리 반도체를 제외한 반도체 시장에서도 존재감을 키워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28일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팹리스 분야 상위 10개 기업의 매출 총합은 1274억5000만 달러(약 156조3800억원)로 전년 대비 48% 증가했다. 지난해 반도체 공급난으로 가격이 급등한 게 매출 성장을 견인했다. 고성능 칩에 대한 수요 증가도 영향을 미쳤다. 트렌드포스는 “고성능 컴퓨팅과 네트워크 커뮤니케이션, 서버, 자동차 등 높은 스펙의 제품 수요가 늘면서 전반적으로 수익이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가장 많은 돈을 벌어들인 기업은 퀄컴이다. 지난해 퀄컴의 팹리스 매출은 293억3300만 달러(약 36조원)으로 2020년보다 51% 늘었다. 2위 엔비디아(248억8500만 달러)는 61%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순위를 한 계단 올렸다. 3위로 밀린 브로드컴은 18% 증가한 210억2600만 달러(약 25조8000억원)의 매출을 거뒀다. 대만 기업들의 성장세도 돋보였다. 4위 미디어텍(179억1900만 달러)의 매출은 2020년보다 61%나 증가했다. 6위에 이름을 올린 노바텍의 성장률은 무려 79%에 달했다.
전체 반도체 시장에서 팹리스 약진도 두드러졌다. 옴디아 조사 결과, 전체 반도체 시장의 전년 대비 매출 증가율은 21.1%였다. 지난해 글로벌 시장에서 100억 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린 반도체 기업 17곳 중 전년 대비 매출 50% 이상 성장 기업은 4곳인데, 모두 팹리스 기업이었다.
그러나 팹리스 시장에서 한국 기업의 존재감은 희미하다. 한국 기업 비중은 1.5%에 불과하다. 미국(56.8%)과 대만(20.7%)은 물론 중국(16.7%)과도 큰 격차를 보였다. 한국 기업 중 규모가 가장 큰 곳은 LX세미콘(1조8988억원)으로 세계 13위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반도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력을 고려하면, 설계 분야에서 역량을 더 키워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종호 서울대 교수(반도체공동연구소장)는 “미국 대만 중국에는 반도체 관련 인재가 많고 그 수준도 놀랄 정도로 높다. 한국은 인구가 적어 양적으로 한계가 있는 만큼 경쟁국과 차별화할 수 있는 교육 커리큘럼을 마련하고 국가 차원의 체계적인 지원으로 이를 뒷받침해 인재를 키워내야 한다”고 말했다.
양한주 기자 1wee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