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부동산 규제 완화 경제 상황에 맞춰 속도 조절해야

입력 2022-03-29 04:01 수정 2022-03-29 09:30
정권 교체 이후 일찌감치 변화의 조짐이 보이는 곳이 부동산 및 대출 시장이다. 현 정부에서 적폐 취급을 받은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의지로 풀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부채 억제라는 당국의 기조로 씨가 말랐던 은행권 대출에도 훈풍이 불고 있다. 윤 당선인의 ‘규제 완화론’이 부동산 시장에 영향을 주고 있다. 다만 인플레이션 현상이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만큼 각종 완화 방안도 국내외 경제 상황에 맞춰 추진돼야 한다.

윤 당선인은 최근 국토교통부 업무보고에 참석해 “다주택자라고 무리하게 규제하는 게 맞는지 세밀하게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다주택자에 대한 시각은 복합적이다. 다주택자들은 서민 주택의 주 공급원이기도 하지만 무분별한 투기를 일삼는다는 지적 또한 적지 않다. 그래서 양도세는 낮춰주되 보유세는 강화하는 게 세계적 추세다. 이에 비춰 볼 때 우리나라의 다주택자 규제는 원칙에 어긋난다. 다주택자의 양도세 최고세율은 75%이고 지방세까지 합하면 82.5%나 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도 다주택자에 대해 1년 정도 한시적 양도세 중과 유예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보유세 역시 오락가락이다. 최근 정부가 공시가격이 급등하자 올해가 아닌 지난해 기준으로 보유세를 매기기로 했다. 하지만 이는 1주택자에만 해당될 뿐 다주택자에겐 올해 공시가격 증가율 17.22%가 그대로 반영돼 보유세가 대폭 늘어난다. 투기와 무관한 일시적 2주택자들의 피해가 우려되기에 규제 완화의 필요성은 없지 않다.

대출 시장의 경우 시중은행의 마이너스 통장 한도가 5000만원에서 4월부터 2억~3억원 수준으로 늘어난다. 대선이 끝나자 전셋값 증액 범위 내에서만 가능하던 전세대출 규제도 없어졌다. 은행들은 올 들어 대출 감소세로 대출 여력이 커졌다고 하지만 당선인의 성향을 감안한 조치라는 지적이 많다. 다주택자가 집을 파는데 어려움을 겪지 않고 내집 마련을 위해 필요한 대출이 가능해진다면 그것 자체가 규제 완화의 효과다. 하지만 시장 원리에 맞다 하더라도 속도 조절이 필요할 때가 있다. 코로나19발 과잉 유동성과 우크라이나 사태는 전 세계적인 물가급등세를 초래했다. 양적 완화를 주도한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올 최대 7차례 금리 인상을 예고하며 물가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자칫 부동산과 대출 규제 완화가 글로벌 긴축 방향에 역행할 경우 물가와 성장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칠 수 있다. 공약 이행도 좋지만 냉철한 상황 분석에 무게를 둘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