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하락 책임, 최저임금 받겠다” 수십억 연봉 포기하는 CEO들

입력 2022-03-29 04:05

국내 상장사 최고경영자(CEO) 사이에서 ‘주가가 목표치에 도달할 때까지 최저임금만 받겠다’는 선언이 잇따르고 있다. 주가의 과도한 급락에 뿔난 주주를 달래기 위한 시도다. 수십억원의 연봉을 받던 CEO의 임금 삭감은 주가 부양 및 책임 경영 의지를 잘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사실상 실현 불가능한 주가를 내세웠다는 점에서 실질적인 대책 없이 보여주기식 조치에 급급한 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2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기우성 셀트리온 대표이사는 지난 25일 열린 주주총회에서 주가 하락에 대한 책임을 지고 최저임금을 받겠다고 밝혔다. 주주들이 주가가 35만원으로 오를 때까지 최저임금을 받고 근무할 것을 요구하자 기 대표가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이날 기준 셀트리온의 종가는 16만8000원이다. 렉키로나주 같은 신약의 저조한 성과와 회계 감리 문제 등으로 지난 1년 새 주가는 49.17% 폭락했다.

기 대표는 “주가가 언젠가 제자리에 가겠지만 주주들이 힘든 결과를 만든 것에 경영자로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최저임금 수령에) 동의하겠다”고 말했다.

쪼개기 상장과 스톡옵션(주식매수선택권) ‘먹튀’ 등 논란으로 주가가 급락한 카카오 그룹사에서도 최저임금 선언이 연이어 나왔다. 남궁훈 카카오 신임 대표 내정자는 지난달 10일 사내 게시판을 통해 “주가가 15만원이 되는 날까지 법정 최저임금 수준의 연봉만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스톡옵션도 그 가격 아래에서는 행사하지 않겠다고 했다.

신원근 카카오페이 신임 대표는 20만원을 목표주가로 제시했다. 회사 주가가 20만원이 되기 전까지 모든 보상을 받지 않고 최저임금만 받겠다고 선언했다. 카카오와 카카오페이 주가는 현재 각각 10만5000원, 14만원이다.

지난해 기 대표는 셀트리온에서 17억원을, 남궁 내정자는 카카오에서 61억원을 보수로 받았다. 이들이 시간당 9160원의 최저임금을 받는다면 연봉은 약 2297만원으로 줄어든다. 연봉 수십억원이 기약 없이 깎이게 된 셈이다.

주가 하락에 책임을 지고 CEO가 수십억원의 연봉을 반납하는 모습은 소액주주의 늘어난 영향력을 보여준다. 지난해 말 기준 카카오 소액주주는 191만명이 넘는다. 소액주주 49만여명의 셀트리온도 회사에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는 강성 주주들이 포진한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회사가 제시한 목표주가를 짧은 시간에 달성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CEO들의 최저임금 선언이 실효성 없는 ‘쇼’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날 기준 카카오와 카카오페이가 목표주가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주가 상승률은 42.86%에 달한다. 셀트리온은 현재 주가의 2배까지 올라도 목표 주가에 도달하지 못한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주가는 기업의 잠재력 미래가치에 의해 결정될 뿐 CEO의 임금 수준과는 큰 관련이 없다”며 “CEO가 그만큼 헌신적으로 경영에 나선다는 상징성은 있겠지만 주가 상승에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방극렬 김지훈 기자 extere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