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 지하철역에 갇힌 신뢰자본

입력 2022-03-29 04:08

몇 해 전, 서울역에서였다. 회사 업무로 세종시에 내려가는 길이었다. 플랫폼으로 내려가는 개찰구 앞에서 괜히 양복 안주머니에 든 차표를 만지작거렸다. 오랜만이기도 했지만 대학생 시절 서울과 부산을 오가던 기차를 타면서 인이 박인 탓이었다. 좌석을 찾아 앉고, 오송역에 내리는 동안 누구도 표를 보여 달라고 하지 않았다. 그런 줄 알면서도 온라인 예매한 표를 굳이 출력한 게 머쓱했다.

그날 일이 떠오른 건 아내와 지하철 데이트를 하며 나눈 얘기 때문이었다. 각자 후불 교통카드를 찍고 ‘장애물’ 역할을 한다고 보기에도 어설픈 게이트를 통과하다가 오래된 기억을 꺼냈다. “○○○, 한 장 주세요”라고 말하고 표를 받아 투입구에 넣어야 했던 일, 역무원 눈을 피해 차단봉을 뛰어넘어 무임승차하던 이들…. 이제는 무임승차를 하는 사람도 드물뿐더러 지하철역 게이트는 사실상 개방 상태다. 소매치기를 걱정하는 일은 없고, 객차 바닥에 지갑이 떨어져도 누구 하나 손을 대지 않는다. 선반에 올린 노트북이나 고가 가방을 탐내는 사람도 없다. 이웃을 믿든, 사회 시스템을 믿든 간에 화장실에서 한 손으로 어깨에 걸친 가방을 꼭 쥐고 있지 않아도 된다.

세계 10위권 경제를 일구는 동안 우리 사회는 그럴싸하게 성장했다. 누구는 빼곡하게 설치된 CCTV 때문이라고, 누구는 가공할 기능을 갖춘 정보통신기술(ICT) 때문이라고 하지만, 두텁게 쌓인 신뢰는 한국 사회를 유지하는 단단한 뼈대로 자리 잡았다. 신뢰, 혹은 신뢰자본은 비용을 절약하고 효율을 높여준다. 무임승차를 잡겠다고 차단봉을 설치하고 사람을 세워 일일이 검사를 하는 대신 그 자원과 돈을 객차와 역사 유지·보수에 더 많이 쓰는 식이다. 알아채지 못할 뿐 우리가 축적한 신뢰자본은 꽤 여러 곳에서 활약한다. 신뢰자본은 경제성장의 중요한 인프라다. 지난해 미국에서 출간된 ‘왜 신뢰가 중요한가(Why Trust Matters: An Economist’s Guide to the Ties That Bind Us)’라는 책을 보면 x축을 법치, y축을 신뢰도로 두고 각 나라를 배치하면 x축과 y축의 최대점수에 근접한 꼭짓점에 노르웨이가 있다. 이어 아래로 스웨덴, 핀란드, 뉴질랜드 등이 분포한다. 미국은 법치 점수는 높으나 신뢰도는 중간쯤에 서 있다. 북유럽 국가들의 신뢰자본은 ‘내가 낸 세금은 어떤 형태로든 나나 내 가족에게 돌아온다’는 믿음에 바탕을 둔다. 노사는 서로를 믿고 사회적 대타협을 이뤘고, 국회의원은 모든 경비 사용내역을 낱낱이 공개한다.

한국은 어디쯤 서 있을까. 우리의 신뢰자본은 지하철역, 기차역, 카페에만 머물러 있다. 대표적으로 기업과 노조, 고용인과 피고용인은 서로를 믿지 않는다. 문재인정부에서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을 논의할 때 월간 혹은 연간으로 노동시간을 저축해서 일감이 없거나 노동자가 원할 때 쉴 수 있게 탄력 운용하자는 제안이 나왔었다. 필요성을 누구나 인정했지만 기업의 횡포와 노동자의 꼼수를 우려한다는 각자의 비판 속에 물 건너갔다. 이웃의 맞벌이 부부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노동정책 공약을 ‘주 52시간제 폐지’로 받아들인다.

엄청난 규모로 쌓은 사회적 자산을 제대로 쓰지 못하게 막는 ‘불신의 장벽’은 정치와 권력체계에서 발원하는 건지도 모른다. 불과 며칠 전 대통령선거에서 봤듯 한국의 정치는 5년마다 사생결단을 한다. 신뢰 대신 불신과 적개심이 똬리를 틀고 있다. 정치세력은 다양하게 꽃피지 못하고, 연정과 협상 따위는 없다. 언제쯤이면 지하철역에 쌓여 있는 신뢰자본이 국회의사당, 정부부처, 청와대(혹은 용산)에서 활짝 꽃 피울 수 있을까.

김찬희 산업부장 c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