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한 사장들이 나갈 리 있나”… 산업부 블랙리스트 수사

입력 2022-03-28 04:04
검찰이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 블랙리스트 의혹’ 최초 고발 접수 후 3년이 지나 압수수색에 나서자 이를 둘러싼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압수수색이 있던 지난 2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근무하던 산업부 원전 관련 부서 관계자들의 모습. 연합뉴스

검찰이 최초 고발 접수 후 3년이 지나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한 압수수색을 진행하자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탈원전 정책 추진을 위해 사표 종용을 받았던 당사자들이 2019년 참고인 조사를 받은 뒤에도 수사에 별다른 진척이 없다가 정권교체기에 속도를 내는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산업부 블랙리스트 의혹은 문재인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9월 산업부 국장급 간부가 박근혜정부에서 임명된 한국남동발전 등 한국전력 산하 발전사 4곳의 사장을 일괄적으로 압박해 사표 제출을 강요했다는 내용이다. 당시 발전사 4곳 사장들은 적게는 1년 4개월, 길게는 2년 2개월까지 임기를 남겨둔 상태였으나 사표 제출 압박 직후 사표를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사퇴를 종용받았던 A 전 사장은 27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멀쩡한 사장들이 한 명씩 나란히 나갈 리가 있느냐”면서 “서울 광화문의 한 호텔에서 산업부 국장을 독대한 자리에서 ‘사표를 내달라는 별도의 요청이 오면 제출해 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인 설명 없이 정부 입장이 정해진 이후 사표 제출 요청이 오면 사표를 제출하면 된다는 지시를 받았다는 것이다.

A 전 사장은 “정부 방침이면 따라야지 무슨 방법이 있겠느냐”며 “다른 발전사 사장들과 상황을 공유하지는 않았지만 그 직후 줄줄이 사표를 내는 모습을 보면서 비슷한 권유를 받았겠거니 생각했다”고 부연했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참고인 조사 이후 3년여간 별다른 진전 상황이 없다가 압수수색을 하는 것이 통상적인 모습에서는 벗어나 보인다”며 “정치적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이공의 양홍석 변호사는 “전 정권 수사에 들어가면 정치 보복이라는 분위기가 깔려있기 때문에 혐의를 확실하게 입증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면 수사의 진정성이나 공정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면서도 “현재로서는 ‘지금 우리가 이런 수사를 하고 있다’는 새 정권 눈치 보기 수사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검찰은 2019년 5월 한국전력 자회사인 남동발전 전 사장 장재원씨를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한 이후 수사를 계속 해왔다는 입장이다. 다만 이번 사건과 유사한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지난 1월 나와 강제 수사에 착수했다는 설명이다. 앞서 대법원은 환경부 산하 공공기관 임원 15명에게 사퇴를 종용해 13명에게 사표를 받아낸 혐의(직권남용 등)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