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줄에 폭탄, 수십명 팔다리 잘려” 체르니히우 참상

입력 2022-03-28 00:02 수정 2022-03-28 00:16
막사 테크놀로지가 제공한 위성사진에 16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체르니히우 민간인 거주지역이 러시아의 공격으로 불타고 있다. AP뉴시스

“매일 밤 지하로 피신한 사람들은 체르니히우가 제2의 마리우폴이 될 거라는 얘기만 하고 있어요.”

우크라이나 북부 국경도시 체르니히우의 언어학자 이하르 카즈메르차크(38)는 26일(현지시간) AP통신과의 전화 통화에서 암울한 현지 상황을 전하며 이같이 토로했다.

체르니히우가 러시아군의 집중적인 공습·포격으로 폐허로 변하고 있다. 주민들은 체르니히우가 잔해만 남은 동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란 두려움에 떨고 있다.

벨라루스에서 수도 키이우로 이어지는 러시아군 침공 경로에 있는 체르니히우는 개전 초기부터 공격 표적이 됐다. 우크라이나군이 효과적으로 방어선을 구축해 러시아군 수중에 넘어가지는 않았지만 집중적인 타격을 받으면서 도시 기간 시설들이 대부분 파괴됐다. 설상가상으로 23일엔 러시아군이 체르니히우에서 키이우로 통하는 도로의 데스나강 교량을 파괴해 시민들을 위한 탈출 통로도 사라졌다. 식품과 의약품 등 인도주의적 구호품이 들어올 길도 완전히 끊겼다.

이 때문에 체르니히우 주민들은 마리우폴에 준하는 심각한 재난 상황에 직면했다. dpa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블라디슬라프 아트로셴코 체르니히우 시장은 “지난 몇 주간 러시아군 공격으로 도시가 완전히 파괴됐다”며 “주민들이 200명 넘게 사망하고 13만명 이상이 난방과 전기, 물 없이 버티고 있다”고 밝혔다. 약국, 상점들은 모두 문을 닫았고 의약품도 바닥났다. 이곳에선 밤마다 폭격이 이어지고, 날이 밝으면 주민들이 식수와 음식을 구하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밖으로 나오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아트로셴코 시장은 “러시아군이 날씨가 맑을 때도 오폭인 척하면서 고의적으로 학교, 유치원, 교회, 주거용 아파트, 심지어 축구 경기장까지 공격해 철저히 파괴하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군이 상하수도 시설이 파괴된 탓에 강가로 먹을 물을 뜨러 가거나 식량 배급을 기다리는 사람들까지 공격하고 있다는 증언도 나왔다. 가까스로 폭격에서 살아남았다는 볼로디미르 페도로비치(77)는 “빵을 얻으려고 서 있는 사람들 위에 폭탄이 떨어져 16명이 즉사하고 수십명이 팔다리가 잘리는 등 중상을 입었다”며 “계속되는 공습 탓에 이제 시민들은 겁을 먹고 피하는 데도 지쳐서 아예 지하 대피소로 내려가지도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이미 러시아군에 포위돼 최악의 인도주의적 위기를 겪고 있는 마리우폴은 식량과 식수가 바닥나는 등 상황이 한계에 다다르면서 민간인 사상자가 속출하고 있다. 영국 BBC에 따르면 세르히이 오를로프 마리우폴 부시장은 “일부는 탈수와 식량 부족으로, 일부는 약품과 인슐린 부족으로 죽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도시 안에는 아이를 위한 음식이 전혀 없다”고 토로했다.

전날 동부 돈바스 지역의 분리·독립으로 전쟁 목표를 축소한 러시아는 곧바로 행동에 나섰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날 친러시아 분리주의 반군이 세운 루한스크인민공화국(LPR)은 시일 내에 러시아 연방 가입을 위한 주민투표를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키릴로 부다노프 우크라이나 국방정보국장은 성명을 내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체를 장악하지 못하자 러시아가 지배하는 지역을 만들어 우크라이나를 둘로 쪼개려 한다”며 “이는 사실상 우크라이나에 북한과 남한을 만들려는 시도”라고 비난했다.

임송수 기자 songst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