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유럽 순방 마지막 날인 26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도살자’라고 부르며 “이 남자는 권력을 계속 유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사실상 러시아 정권 교체를 겨냥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바이든 대통령이 있는 폴란드에서 불과 70㎞ 떨어진 우크라이나 국경 도시 르비우에 미사일을 쐈던 러시아는 “그건 당신이 결정할 일이 아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폴란드 바르샤바 대통령궁 앞 연설에서 “러시아는 민주주의를 목 졸라 죽였고, 다른 곳에서도 그렇게 하려 한다”며 “이 전쟁은 이미 러시아의 전략적 실패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신속하고 가혹한 대가만이 러시아의 진로를 바꿀 유일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푸틴 권력 유지 불가 발언은 27분간 이어진 연설 말미에 나왔다. 그는 러시아 국민에게도 “여러분이 무고한 어린이와 노인들을 죽게 하고 병원과 학교, 산부인과까지 파괴하는 전쟁을 용인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며 “이는 여러분의 본질이 아니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그러면서 “우리는 적이 아니다. 푸틴이 시작한 전쟁으로 인해 러시아가 전 세계로부터 고립되고 과거로 뒷걸음치게 해선 안 된다”며 “이 남자는 권력을 계속 유지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는 해당 발언이 원고에 없던 즉석연설로 보인다고 전했다.
외신들은 여러 해석을 쏟아냈다. AP통신은 푸틴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했다고 했고, 워싱턴포스트도 “러시아 정권 교체에 대한 지원을 시사하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 CNN은 “바이든 대통령은 푸틴이 더는 러시아 지도자가 돼선 안 된다고 선언했다”며 “미국의 러시아 접근법에 중대한 변화를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백악관 관계자는 연설 후 기자들에게 “대통령 발언의 요점은 푸틴 대통령이 이웃 국가나 지역에 권력을 행사하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는 것”이라며 “러시아에서 푸틴의 권력이나 정권 교체를 논의한 건 아니다”고 진화에 나섰다.
러시아는 강하게 반발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런 개인적인 모욕은 양국 관계 회복을 위한 기회의 창을 좁혔다”며 “국가 지도자는 정신 차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바이든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을 겨냥한 비난 수위를 높이면서 미·러 관계 냉각도 더 깊어지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연설 전 우크라이나 피란민을 만나기 위해 찾은 바르샤바 국립경기장에서 ‘푸틴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도살자”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연설에선 푸틴 대통령을 ‘전범’ ‘살인 독재자’라고 부르기도 했다.
러시아는 바이든 대통령 연설 직전 폴란드에서 불과 70㎞ 떨어진 우크라이나 국경 도시 르비우에 미사일 공격을 가했다. 르비우는 그동안 거의 공격을 당하지 않던 도시였다. 타 지역에서 온 수십만 피란민들의 거점이 되는 도시이기도 하다.
안드리 사도비 르비우 시장은 “적군의 오늘 공격은 현재 폴란드에 머물고 있는 바이든 대통령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