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실언제조기(gaffe machine)’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말실수가 잦음을 인정하며 스스로 이 표현을 썼다. 인터넷에는 ‘바이든 10대 실언’ 같은 모음집이 돌아다닌다. 2019년 어느 연설에서 “나는 이번 대선에 출마하는 어떤 후보보다 진보적”이라고 말한 것도 그런 목록에 있다. 당시는 출마선언을 하기 전이었는데 이렇게 말하는 통에 출마하려는 속마음을 들켜버렸기 때문이다. 그의 실언은 대부분 연설 중에, 그것도 말미에 나온다는 공통점을 가졌다. 정교하게 작성된 원고에서 잠시 벗어나 애드리브로 뭔가 덧붙일 때 문제가 생기곤 했다.
26일(현지시간) 폴란드에서 한 연설에도 그런 대목이 담겼다. 러시아에 맞서 동맹을 결집하는 유럽순방의 마지막 날, 마지막 연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바이든은 프롬프터에 없던 한 문장을 말했다. “그자(푸틴)가 권력을 계속 쥐고 있어선 안 된다.” 이는 러시아 정권 교체, 즉 푸틴의 축출을 뜻하는 말로 해석되며 큰 파장을 일으켰다. 만약 그렇다면 우크라이나 사태가 미국 대 러시아의 전쟁으로 확대되는 상황을 극도로 경계하던 입장이 완전히 바뀌는 셈이었다. 백악관은 즉각 “푸틴이 이웃 나라에 권력을 행사하게 놔둬선 안 된다는 뜻”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최근 푸틴을 향한 바이든의 발언 수위는 계속 고조돼 왔다. “영혼이 없다”→“폭력배”→“도살자”→“살인마 독재자”→“전범”. 그 패턴을 보면 “축출”은 분명히 다음 순서의 선택지 중 하나가 될 만한데, 문제는 연설 도중 애드리브에서 그 말이 나왔다는 데 있다. 즉흥 발언을 하다가 속내를 들키곤 하던 바이든의 전력은 푸틴을 축출하고픈 생각이 지금 그의 뇌리에 자리 잡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또 그것은 푸틴의 핵무기 사용 등 시나리오별 대응전략을 짜내고 있는 백악관 ‘타이거 팀’의 전문가들이 아직 뾰족한 대안을 찾지 못했다는 뜻이라고 미국 언론은 분석했다. 한마디로 바이든의 고민이 투영된 실언이었다는 것이다. 핵을 가진 독재자를 다루는 일이 이렇게 어렵다.
태원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