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은 의식을 지배하는 걸까? 의식이 공간을 지배하는 걸까? 영국의 철학자 알랭 드 보통은 저서 ‘행복의 건축’에서 고대에서 현대까지 건축의 규모와 디자인, 색채는 인류 역사와 함께 사상, 문화, 사고방식에 크게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건축 심리학이다. 3·9 대선 이후 청와대 이전 문제가 핫이슈로 부각되면서 정치심리학과 대통령리더십을 연구해온 필자로서는 찬반을 떠나 지난 70여년간의 ‘청와대 흑역사’가 떠오른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지만 청와대라는 ‘공간’이 오랫동안 우리 국민들의 ‘부정적 의식’과 역대 대통령들의 ‘권위적 의식’에 어떤 영향을 주고받았을지 한번쯤 반추해 보자.
광복 이후 청와대(경무대)의 주인은 이승만(하야-망명)→윤보선(하야)→박정희(피살)→최규하(하야)→전두환(구속)→노태우(구속)→김영삼(아들 구속)→김대중(아들 구속)→노무현(자살)→이명박(구속)→박근혜(탄핵-구속)로 이어져 왔다. 11명의 전직 대통령 가운데 본인이 무사한 김영삼 김대중 2명을 제외하고 9명이 임기 도중에 하차했거나 감옥에 갔거나 비참하게 세상을 떠났다. 이를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9/11×100%=81.8181%가 된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대통령이 청와대에 들어가서 비참해질 확률, 즉 실패한 대통령이 될 확률은 80%가 넘는 셈이다. 반대로 성공할 확률은 겨우 20% 미만이라고 할까. 이런 상처투성이의 트라우마 역사 속에서도 우리나라가 이 정도로 발전해온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그렇다면 문재인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으로 기록될 확률은? 나아가 윤석열 당선인이 성공한 대통령으로 임기를 마칠 확률은 얼마나 될까? 바로 이러한 청와대의 흑역사 때문에 문 대통령을 비롯한 역대 대통령들이 늘 ‘탈청와대’를 꿈꾸었던 게 아닐까.
우리 대통령들이 청와대만 입성하면 번번이 비극적인 말로를 밟았던 이유는 첫째 제왕적 사고, 둘째 분열정책, 셋째 정치제일주의라고 본다. 그들은 은연중에 왕처럼 행동하고, 통합보다 분열을 추구하며, 민생보다 정치를 중요시했다. 이 중에 가장 심각한 것이 제왕적 사고(emperial mind)이다. 필자의 청와대 근무경험과 연구로 보건대 제왕적 사고는 청와대라는 구중궁궐에서 받는 과잉 의전과 과잉 경호가 주요인이다. 아무리 겸손한 사람이라도 청와대에서 6개월만 최고급 의전과 최고급 경호를 받고 생활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제왕적 마인드를 갖게 될 것이다. 겉은 대통령이고 속은 왕이다. 감히 어느 누가 왕에게 직언을 할 수 있겠는가? 어느덧 오만한 왕으로 변해간다. 오죽하면 미국 대통령사의 산증인으로 불리는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이 “권력은 최음제와도 같다”고 했을까. 문재인정부에서 가장 비판받고 있는 것도 이념적 우월주의에 사로잡힌 586 운동권 중심의 폐쇄적인 정치공학이 아니었던가. 우리나라에서 성공한 대통령이 되려면 제왕적 사고보다는 겸손함, 분열정책보다는 통합정책, 그리고 정치제일주의보다는 민생경제제일주의를 임기 5년 내내 견지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코로나 정국 속에서 많은 부담을 감수하고 청와대 집무실 이전을 추진하는 이유는 알랭 드 보통의 말처럼 청와대라는 공간 이전을 통해 기존의 정치 문화와 권력 시스템을 송두리째 바꾼 최초의 대통령이 되고 싶은 강한 의욕 때문일 것이다. 윤석열호의 국정 브랜드 넘버원이 되다시피 한 ‘용산 시대’가 순조롭게 진행되려면 ‘공간의 변화’와 함께 ‘의식의 변화’가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공간과 의식은 불가분의 관계다. 즉 역대 대통령들이 청와대에서 답습했던 권위의식으로부터 과감히 탈피해야 하며, 그것은 국민설득과 국민소통에 있다. 윤 당선인은 용산 시대가 도래할 경우 대한민국과 국민들에게 어떤 긍정적인 변화와 발전이 있을지를 가슴에 와닿게 설득하고 소통하는 노력이 더 필요하다.
5월 10일 취임하면 국무총리를 비롯한 장차관 인사 청문회, 여야 협치,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외교 안보, 그리고 6·1 지방선거와 같은 숱한 난제들이 기다리고 있다. 아무쪼록 윤 당선인은 겸손 통합 민생이라는 3대 성공 조건을 늘 가슴에 새겨서 공간과 의식의 변화를 동시에 추진하기 바란다. 그리하여 기존의 ‘청와대 스타일’을 과감히 탈피해서 ‘청와대의 흑역사’를 종식하고 새로운 ‘국민 중심의 백역사’를 써 나가기를 기대한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