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만에 끝날 것 같았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이 5주 차에 접어들었다. 전쟁은 결국 사람과 경제에 달려 있는데, 우크라이나에는 이 두 요소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애국심 넘치는 국민과 외국의 경제 지원(혹은 러시아 경제 제재)이 그것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참혹하게 유린하고 있지만 러시아 국민도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다. 그리고 세계는 서로 연결되어 있기에 이번 전쟁으로 전 세계 모든 사람들 역시 피해를 받는다. 석유와 식량 같은 핵심물자는 물론이고 조그만 생필품에 이르기까지 교역 자체가 불안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종국적으로 환율에 반영되는데, 최근 국제 환율시장이 흔들리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서울팝스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하던 우크라이나 출신 연주자가 전쟁터가 된 조국으로 돌아가 총을 들었다(국민일보 3월 4일자 참조). 외국에서의 편안한 삶을 버리고 조국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무릅쓴 것이다. 이런 사례는 3차 중동전쟁 당시 이스라엘인의 귀국행렬 이후 55년 만에 처음이 아닌가 싶다. 그 전쟁에서 누가 승리하였는가를 기억해 본다면, 이 전쟁이 압도적인 전략 차이에도 불구하고 길어지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전쟁이 길어진다면 가장 고통스러운 쪽은 우크라이나가 되겠지만 러시아도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러시아의 반인륜적 범죄행위에 치를 떨고 있는 거의 모든 국가가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국제결제망에서의 퇴출부터 러시아의 주요 수출품인 석유와 가스에 대한 무역 제재에 이르기까지 러시아를 국제교역에서 왕따시키고 있다. 물자뿐 아니라 자금도 마찬가지다. 이미 러시아 기업은 세계 주식시장에서 제외되었으며, 금명간 국가부도(디폴트)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결국 물자와 돈줄이 끊긴 러시아 경제는 지금보다도 더 엉망진창이 될 것이다. 당장 금년도 경제성장률은 -15%에 이를 전망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러시아 루블화는 휴지조각이 되어야 할 텐데, 최근 안정을 되찾아가는 모습이 희한하다. 러시아 환율은 전쟁 전에 달러당 75루블 수준이었는데, 150루블까지 급등하였다가 지금은 100루블 언저리로 가라앉고 있다. 이는 러시아 경제가 폭망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는 투자자가 늘고 있음을 시사한다. 물론 러시아는 미국과 더불어 자급자족할 수 있는 지구상 유이(唯二)한 국가다. 매우 힘들겠지만 세계와 고립하여 견딜 수 있는 나라다. 반면 세상은 러시아가 없으면 상당히 불편해진다. 경제 제재로 석유와 같은 러시아 수출품의 판로가 막히자 주요 원자재가격이 뛰고 곳곳에서 생산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안 그래도 물가 불안에 시달리는 세계경제에 근심이 깊어지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눈치챈 일부 투자자들이 종전이 임박할 것으로 예단하고 러시아 자산을 싼값에 매입하려는 움직임 역시 포착되고 있다. 더구나 러시아는 환율급등을 방어하기 위해 2월 말에 기준금리를 전격적으로 10.5% 포인트 올려 20%로 만들어 버렸다. 다시 말하면 러시아 루블을 가지고 있다면 20%의 수익을 보장받는다는 말이다. 그러니 이 난리통에도 루블화가 솟구치지 않는 것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아직도 전쟁의 종말이 불투명하기에 러시아 시장에 대한 투자는 매우 위험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환율 역시 러시아 루블화와 비슷하게 움직이고 있다. 세계경제가 서로 연결되어 있고, 특히 원자재 수입과 공산품 수출이라는 우리 경제의 구조적 특성상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전쟁으로 가격이 많이 오른 유가로 예를 들어보자. 우리가 수입하는 원유가 1년에 10억 배럴쯤 되므로 유가가 배럴당 10달러만 오른다고 해도 100억 달러의 무역수지 적자요인이 발생한다. 또 유가 상승은 물가 불안과 수출경쟁력 약화까지도 초래한다. 이 모든 상황이 환율 상승으로 모여지는 것이다.
한 국가의 돈의 가치를 나타내는 환율은 단기적으로는 외화에 대한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되지만 장기적으로는 그 나라의 경제체력(펀더멘털)에 따른다. 중장기적으로 환율이 상승(돈의 가치 하락)한다면, 그 나라 경제체질이 약해지고 있다는 의미다. 다른 나라보다 물가가 불안하고 내실있게 성장하지 못한다면, 그 나라의 국가경쟁력과 더불어 돈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전쟁으로 가려졌지만 사실 세계 각국의 경제체력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 10일 전에 있었다. 바로 기축통화국 미국의 금리 인상이다. 미 연준은 물가가 8%에 육박하자 예상대로 금리를 0.25% 포인트 올렸다. 더구나 이번에 공개된 미 연준의 향후 금리 예상도를 보면 내년 말까지 2.5% 포인트는 더 오를 것 같다. 그간 시중에 풀었던 자금도 5월 이후부터는 회수하겠다고 분명히 했다. 바야흐로 제로금리 시대가 끝나고 긴축의 시대로 들어선 것이다. 더구나 러시아 침략전쟁의 영향으로 물가 불안이 더욱 가중될 것이고 보면(전쟁이 2월 24일에 시작되었으므로 그 영향은 아직 집계되지 않았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미 연준의 긴축속도는 예상보다 빨라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개별 국가들이 이런 상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면 환율이 급등하고 외화자금이 탈출하는 등 위기를 맞을 수 있다. 국제금리가 제로일 때 러시아가 환율방어를 위해 금리를 20%로 올렸는데 국제금리가 1%대로 올라선다면 러시아 중앙은행은 금리를 몇 %나 올려야 할까. 다른 국가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비슷한 고민에 빠지게 될 것이다. 금리 상승은 필연적으로 경기둔화를 초래하는데 과연 국제금리 상승 속도에 맞추어 금리를 계속 올릴 수 있을까. 이것이 다음 달 칼럼 주제이다.
한국은행 자문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