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인류가 러시아의 반인륜적 침공을 규탄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국토가 유린당하고 민간인의 죽음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어느 나라도 병력을 지원하지 않는 냉혹한 국제정치 현실이 그 속에 숨어 있다. 그나마 우크라이나 지도자와 국민이 결연한 항전 의지를 보이고 국제사회가 무기나 병참을 지원해 버티고 있는 상황이다.
비극적 상황을 보면서 전쟁을 막을 수는 없었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나토 회원국들이 어차피 수년 이내에는 가입을 용인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으므로, 만약에 우크라이나 지도자가 자주 국방력 강화에 주력하고 러시아와 타협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중기적으로 조용히 나토 가입 외교를 펼쳤다면 러시아의 침략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의 6·25도 돌이켜 보면 반성할 점이 있다. 김일성이 이미 1949년 초부터 무력침공을 통한 통일을 위해 군사력 강화에 매진하는 상황에서 6월 말 미군이 철수한 데다 국공 내전에서 10월 1일 중국이 공산화된 상황을 감안하면, 우리는 스탈린과 마오의 지원을 받아 김일성이 전면적으로 남침할 것에 더욱 철저히 대비했어야 했다. 북한보다 군사력이 약한 상황에서 오히려 단독 북진 가능성을 앞세워 주한 미국대사를 압박함으로써 미국이 한국의 국방력 강화 지원이나 안보 보장을 꺼리게 했다. 만약 한국 정부가 국방력 강화에 주력하면서 미국 등 우방국들과의 협력과 유대 강화를 모색했다면 남침을 막았거나 적어도 3일 만에 서울을 내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두 사례의 공통 교훈은 우선 국제정치 상황을 현실주의 관점에서 냉철하게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국가안보는 우리가 지킨다는 각오와 의지를 갖고 있지 않으면 어느 나라도 우리를 지켜줄 수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 이런 바탕에서 지혜로운 전방위 실용 협력외교를 펼쳐야 한다.
현재 국제사회에는 수년간 미·중 갈등이 고조되는 와중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급속히 신냉전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 민주국가들이 단합해 러시아를 제재하고 있으며 미국은 나토 장악력을 확보하고 아시아에서도 한국, 일본, 호주와의 동맹체제를 강화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의 압박과 유럽과의 경제협력 관계를 고려해 중립적인 입장을 내세우지만 사실상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인 러시아와의 에너지, 식량 등 비군사부문 교역은 지속하면서 유대를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북한은 이 상황을 대미 도발의 호기로 간주하는 듯하다. 4월 15일 김일성 출생 110주년을 맞아 경제난으로 시달리는 주민들의 사기를 북돋고 대미 전략적 억지력을 확보하며 협상력도 강화하기 위해 또다시 대륙간탄도탄 시험을 강행하는 등 추가 도발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북·중·러 대 한·미·일 간 신냉전 구도가 재현되는 모습이다.
제일 우려되는 것은 미국과 중·러 갈등 및 대립이 남북의 대리전으로 분출되는 것이다. 그러나 한반도 상황은 최악의 상황을 보이다가도 결국 파국은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으므로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대화와 협상 국면이 전개되곤 했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할 바는 명확하다. 먼저 북한의 도발을 억지하는 자주 국방력을 꾸준히 갖추어야 한다. 또 대화와 협상, 평화 구축의 가능성이 보이면 언제든 이를 적극 모색해야 하지만, 대립 국면에서는 2015년 목함지뢰 사건 때처럼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만반의 대비태세를 갖추고 중국이 북한의 도발을 억지하도록 외교력을 발휘하면서 당당히 북의 도발에 맞서야 한다. 냉철한 국제정세 인식과 자강력 확보 의지 그리고 현명한 외교력을 발휘하면 어떤 위기도 극복할 수 있다.
홍현익 국립외교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