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의 종류에 대해 생각한다. 먼저, 미소는 ‘짓는’ 것이다. 작을 ‘미’ 자에 웃을 ‘소’ 자를 써서 소리 없이 빙긋 웃는다는 것이 사전적 정의다. 우리는 거짓으로도 미소를 지을 수 있다. 그러니까 미소는 비교적 주체할 수 있는, 통제가 가능한 웃음이다. 차가운 웃음이라는 뜻의 냉소는 주로 ‘하는’ 것이다. 냉소적인 표정을 거짓으로 짓는 경우는 드물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나는 옛날에 어떤 냉소적 인물에게 잘 보이고 싶어 거짓으로 냉소적인 표정을 지은 적이 있다. 뿌리 깊게 자리 잡힌 냉소는, 쉽게 거둘 수 있는 미소와 달리 꽤 긴 마음 수련 끝에 거둘 수 있다.
실소는 분명히 ‘짓지’ 않고 ‘한다’. 실소하다라는 표현 대신 실소를 터뜨린다는 표현을 함께 쓰기도 한다. 실소는 터뜨린다는 표현과 함께 쓰이듯 통제가 잘되지 않는 웃음이다. 나도 모르게 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은 막을 도리가 별달리 없다. 그렇다면 폭소는? 터뜨린다. 폭이라는 한자는 터지고 폭발하고 불사른다는 뜻을 가졌다. 그야말로 빵 터지는 것이다. 갑작스레 터지는 폭소는 예측불가능하고 통제 불가능한 영역에 있다. 의도치 않은 눈물과 침으로 얼굴이 뒤덮일 수 있는 것이다. 위험한 종류의 웃음이다. 심지어 속옷에 실례할 수도 있다.
얼마 전에는 영화를 한 편 봤다. 한 스탠드업 코미디언이 무대 위에서 자신의 아내를 간지럼 태워 죽이는 장면을 연기하고 있었다. 그는 바닥을 구르며 자기 아내의 비명과 신음, 폭소를 흉내 냈다. 나는 간지럼에 매우 취약하기 때문에 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웠다. 심한 간지럼은 내게 극한의 포복절도를 선사해 이성을 놓은 채 험한 욕을 하고 상대를 팔꿈치로 가격할 명분을 준다. 간지럼은 폭소의 예측불가능한 영역을 예측가능한 영역으로 옮겨놓는다. 그것은 웃음의 세계에서 오히려 실례이자 반칙이라는 생각이 든다. 간지럼으로 사람을 웃겨 죽인 코미디언 당신, 옐로카드.
이다울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