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에 힘실어준 감사원… “현시점 감사위원 제청 적절한지 의문”

입력 2022-03-26 04:03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5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집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윤 당선인은 이날 오후 국토교통부 업무보고에 깜짝 등장해 “다주택자라고 무리하게 규제하는 게 과연 맞는지 더 세밀하게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감사원은 “현시점처럼 정치적 중립성과 관련된 논란이나 의심이 있을 수 있는 상황에서 감사원장의 감사위원 임명 제청권을 행사하는 것이 적절한지 의문”이라고 25일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문 대통령 임기 말 감사원 인사 문제’로 강하게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감사원이 윤 당선인 측과 맥을 같이하는 입장을 낸 것이다.

감사원은 이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상대로 가진 업무보고에서 “(정권 이양기에는) 현 정부와 새 정부가 협의되는 경우에 제청권을 행사하는 것이 과거 전례에 비춰 적절하다”며 이같이 밝혔다.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의 대립이 해소되지 않는 한 감사위원 임명을 제청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일부 언론은 인수위가 업무보고 자리에서 감사원에 대해 ‘청와대의 임명제청 요구를 거부하라’는 취지로 종용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원일희 인수위 수석부대변인은 “사실관계가 완전히 다르다. 인수위는 감사원에 제청을 거부하라 말아라 할 아무 법적 권한도, 이유도, 생각도 없다”며 해당 보도를 부인했다.

헌법 98조 3항에는 ‘감사위원은 원장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명시돼 있다. 문 대통령이 감사원 인사를 단행하고 싶어도 임명 제청권을 가진 감사원장이 거부할 경우 인사권 행사가 불가능하다.

이같은 이유로 과거 문 대통령이 김오수 전 검찰총장(당시 전 법무부 차관)을 감사위원으로 임명하지 못한 적이 있다. 당시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청와대로부터 ‘김 총장을 감사위원으로 제청하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끝내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청와대와 윤 당선인 측은 현재 공석인 감사위원 두 자리의 인사권을 어떻게 행사하느냐를 두고 신경전을 벌여왔다.

청와대는 윤 당선인 측의 의견을 수렴하되 인사권 자체는 법률대로 문 대통령이 행사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반면 윤 당선인 측은 인사권을 새 정부에 넘겨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감사원이 사실상 윤 당선인 측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 간 회동의 걸림돌로 꼽혀온 감사원 인사 논란이 감사원의 입장 표명에 따라 새 국면을 맞으면서 양측 회동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일각에서는 회동의 선결조건 중 하나로 거론됐던 인사권 논란이 점차 정리되며 회동 가능성을 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러나 오히려 양측이 실무협의를 통해 직접 협상할 여지가 줄어들면서 대화가 더 힘들어진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만만찮다.

한편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 간 ‘신구 권력’ 갈등의 책임을 상대 진영에 뒤집어씌우며 책임 공방을 벌였다. 특히 전날 수면 위로 떠오른 인수위와 법무부 간 갈등 논란을 문제 삼았다.

앞서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지난 23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윤 당선인의 ‘법무부 장관 수사지휘권 폐지’ 공약에 대해 공개 반발했다. 이에 인수위는 24일 오전 예정됐던 법무부 업무보고를 취소하고 다음 주로 유예했다.

이에 대해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박 장관이 정치적 중립의무를 완전히 내버린 채 민주당 주장만을 대변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윤호중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인수위의 법무부 길들이기”라며 “인수위가 제왕적 통치로 공직자들을 줄 세우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고 반격했다.

오주환 기자 joh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