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참관 아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시험발사에 성공했다고 25일 밝혔다. 김 위원장이 단독 대북제재에 나선 미국을 향해 ‘장기 대결’을 선언하고, 핵무력 완성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등 정권교체기 한반도 정세가 격랑에 휩싸이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김정은 동지의 직접적인 지도 밑에 24일 화성포-17형 시험발사가 단행됐다”며 “무기체계의 모든 정수들이 설계상 요구에 정확히 도달됐다”고 밝혔다.
통신은 김 위원장이 평양 순안비행장을 찾아 시험발사의 전 과정을 세세히 지도하고 친필 명령서까지 하달했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은 “조국과 인민의 위대한 존엄과 명예를 위하여 용감히 쏘라”고 명령서에 적었다.
미국을 겨냥한 무기체계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김 위원장은 “우리 국가 방위력은 어떠한 군사적 위협 공갈에도 끄떡없는 막강한 군사 기술력을 갖추고 미 제국주의와의 장기적 대결을 철저히 준비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핵무기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통신 보도에는 ‘핵’이 들어간 단어가 13번이나 쓰였으며, 2017년 이후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던 ‘핵 공격 수단’이라는 공세적 표현도 포함됐다. 이에 따라 북한이 추가 ICBM 발사나 핵실험 등 고강도 도발을 이어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통신은 이번에 발사한 화성-17형에 대해 “최대 정점고도 6248.5㎞, 비행거리 1090㎞를 67분간 비행해 북한 동해 공해상의 예정 수역에 정확히 탄착됐다”고 전했다. 이는 전날 우리 군 당국의 탐지 정보와 거의 유사하다. 북한이 2017년 발사한 ICBM ‘화성-15형’은 최대고도 4475㎞까지 올라간 뒤 950㎞ 가량을 53분간 비행했었다. 이번 발사로 4년 4개월 만에 고도·비행시간·사거리 모두 경신한 것이다.
정상 각도로 쏠 경우 최대 사거리는 1만5000㎞ 이상으로 미국 본토 전역은 물론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등 주요 대륙을 모두 사정권 안에 둔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화성-17형에 대해 소형 핵탄두 3~4개 탑재 가능한 다탄두 ICBM으로 평가했다. 다만 ICBM에 필수적인 대기권 재진입 기술 확보 여부는 고각 발사로는 판단이 어려워 아직 불분명한 상태다.
합동참모본부는 북한의 보도에 대해 “한미 정보당국은 여러 가지 가능성을 두고 정밀 분석 중”이라고 밝혔다. 북한이 화성-17형이 아닌 다른 미사일을 발사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미국은 북한의 ICBM 발사 공개 이후 1시간 만에 추가 제재 카드를 꺼냈다. 미 국무부는 북한의 미사일 개발을 주도하는 제2자연과학원(현 국방과학원) 국제업무 담당국을 포함해 북한 국적자 1명과 러시아 기관 2곳 및 러시아 국적자 1명을 제재했다고 발표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이날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만나 북한의 ICBM 시험 발사를 규탄하면서 대북 외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국은 25일(현지시간) 뉴욕에서 개최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공개회의에 이해당사국으로서 참석해 북한의 ICBM 발사 대응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다만 안보리 차원의 공동 대응은 상임이사국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성사되기 어려워 중국, 러시아에 의해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있다.
정우진 기자 uz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