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 사무엘 형제여 편히 잠드소서

입력 2022-03-29 20:23 수정 2022-03-29 20:34
한국 유학 중에 숨진 고 사무엘 형제의 빈소.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것이거늘”

-야고보서 4:13-15

성경의 땅, 우리에게 잘 알려진 에티오피아 내시의 나라에서 한국에 유학을 온 믿음의 형제가 있었다. 그에겐 2살 반 된 아이가 있었고 3개월 후에 태어날 태아가 엄마 뱃속에서 자라고 있었다. 그는 아내와 아이들을 에디오피아에 남겨둔 채 대한민국에 부푼 꿈을 가지고 혼자 유학을 왔다. 그는 에티오피아에서 수자원, 기후변화, 에너지정책 분야의 전문성을 가진 고급공무원으로 재직 중에 한국에 공부하러 왔다. 그는 성실한 사람이고 좋은 아빠였다. 이런 그가 안타깝게도 한국에 온지 4개월 만에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왜 세상을 떠났는지 그 자신과 하나님만 안다.

유학생 사역자로서 소식을 듣고 고국에 남겨진 유가족 아내 라헬과 아이를 생각하니 마음이 먹먹해졌다. 에디오피아 장례 문화상 시신이 고국에 도착하기까지 금식하며 애곡을 한다고 하니 더 빨리 시신이 한국에서 에디오피아까지 이송될 수 있도록 도와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창세기 50장의 그림이 떠올랐다.

“요셉이 그의 아버지 얼굴에 구푸려 울며 입 맞추고 그 수종 드는 의원에게 명하여 아버지의 몸을 향으로 처리하게 하매 의원이 이스라엘에게 그대로 하되 사십 일이 걸렸으니 향으로 처리하는 데는 이 날수가 걸림이며 애굽 사람들은 칠십 일 동안 그를 위하여 곡 하였더라”-창세기50:1-3

처음 사무엘 형제의 죽음에 대한 연락을 받은 것은 서울대 에너지정책학 박사 에티오피아 에브리임 헤센 박사가 보내온 카톡으로 지난 1월 19일 새벽 12시27분이었다. 그 정도로 급박한 상황이었던 것을 알려주었다. 이런 위기의 순간에 답은 현장에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당일 전화로 자초지종을 묻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노량진이었다.

그곳은 에티오피아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는 곳이다. 그곳에서 에디오피아 교민회장 알렉스를 만났다. 교민회장과 에디오피아 학생회장과 함께 공부했던 학교를 방문했다. 담당자를 만나려고 백방으로 노력을 했지만 학교는 문도 열어 주지 않았다. 전화로만 통화가 가능했다. 안타까운 것은 누구도 책임을 지고 선뜻 앞장서서 이 일을 하려고 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문제해결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에티오피아는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때 아프리카에서 제일 먼저 참전한 국가이다. 셀라시에 황제는 최정예 부대라 할 수 있는 황실 군대 강뉴부대 6307명을 한국에 파병한 나라이다. 강뉴부대는 강원도 양구, 화천, 철원 지역 등에서 253회의 전투에서 모두 승리하며 에티오피아의 용맹스러움을 보여 주었다. 121명의 전사자와 536명의 부상자를 내어 총 657명의 군인들이 피를 흘리면서 대한민국의 자유를 수호한 나라이다. 에디오피아는 대한민국이 빚진 나라이다. 그래서 한국은 지금도 에티오피아를 도우려고 참전후원회를 만들어서 활약하고 있다. 또한 명성교회가 300억의 기금을 조성해서 만든 에티오피아 명성병원과 에디오피아 명성의과대학이 아디스바마에서 참전용사를 무상으로 치료하고 있다.

필자는 이렇게 계속 안타까워만 하고 있으면 안 되겠다 싶어 빈소를 마련하고 후원금을 모아 시신을 무사히 에티오피아 가족에게로 보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시간이 지체될수록 시신이 안치된 병원비는 늘어가고 에디오피아 가족들은 애타게 시신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우선 유학생 사역자들과 상의하여 글로벌 비전교회에 빈소를 마련하여 후원금을 모금하기 시작했다. 병원비와 시신을 싣고 갈 비행기 경비 등이 적지 않은 예산이 필요했다. 그동안 사무엘 형제를 에티오피아에 보내기 위해서 정부와 여기저기 도움을 청했으나 쉽지 않았다.

감사하게도 우여곡절 가운데 한국에서 17일 만에 모든 장례절차를 마치고 엄숙하고 은혜 가운데 발인예배가 드려졌다. 필자는 한국 상주가 되어서 주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매달렸다. 사무엘 형제의 죽음이 헛되지 않고 모든 문제들이 잘 처리되고 에티오피에 무사히 시신이 도착할 수 있도록 기도했다.

에디오피아현지 장례 모습.

하나님의 은혜로 장례에 필요한 경비들을 채워주셨다. 하나님께 기도한 대로 한국교회와 선교단체의 헌신으로 은혜 가운데 모두 해결되었다. 비행기에 실은 운구도 그리운 땅 고향 에티오피아로 무사히 옮겨졌다. 비통해 하는 여인 아내의 얼굴이 보인다. 매장을 하고 있는 현지의 생생한 현장 사진이 도착했다. 사진을 보는 내내 먹먹하여 나도 모르게 눈물이 앞을 가렸다. 현지 가족들은 매장 이후에도 2~3주 계속해서 조문객들을 맞이한다고 한다. 에디오피아는 화장 문화가 아니라 아직도 매장문화이다. 에디오피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30년 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사라가 백이십칠 세를 살았으니 이것이 곧 사라가 누린 햇수라 사라가 가나안 땅 헤브론 곧 기럇아르바에서 죽으매 아브라함이 들어가서 사라를 위하여 슬퍼하며 애통하다가 그 시신 앞에서 일어나 나가서 헷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이니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할 소유지를 주어 내가 나의 죽은 자를 내 앞에서 내어다가 장사하게 하시오”-창세기23:1-4

에티오피아 사무엘 형제는 이 땅에서의 모든 눈물, 수고, 고통에서 해방되었다. 비록 한국에 유학 와서 꿈을 이루지 못하고 시신으로 다시 고국에 돌아갔지만 한국에서 드린 그의 예배와 기도는 살아서 남아 대한민국의 유학생 선교부흥을 이루는 초석으로 사용하실 것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태복음 11:28-30

우리에게는 한 가지 소망이 있다. 부활이다. 이 땅에서 자다가 홀연히 일어날 것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한복음 11: 25-26)”고 하셨다.

한국 사람이 익숙한 한국어가 어떤 외국인에게는 배우기 아주 어려운 언어이다. 그의 마지막 유품 노트에는 한국어로 연습한 것이 발견되었다. 서울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한 유학생은 “어떤 경우에는 4번 한국어 시험에 불합격하여서 이제는 유학을 포기하고 귀국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유학생 당사자에게는 한국어가 유학의 성패를 좌우하는 아주 중요한 언어이다. 글로벌비전센터는 한국어를 유학생에게 가르치고 있다. 우리의 사명이 막중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문성주 목사= 유학생 사역의 최고 전문가로서 사명을 받고 현재 서울대학교를 중심으로 각 나라별로 유학온 학생들을 대상으로 예배와 성경공부, 한국문화 교육 등을 통해 기독인재를 양성하고 있다. 현재 39개국 70명의 지도자를 국가별 인재를 양성하고 있다. 앞으로 200개국 영역별 지도자를 양성하는 것이 꿈이다. 현재 나라별로 한 두명 소수를 선발하여 집중적으로 멘토링과 기도를 통해서 영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문성주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