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정권교체기 틈타 ‘모라토리엄’ 파기… 한반도 격랑속으로

입력 2022-03-25 04:05
우리 군이 24일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추정되는 장거리 탄도미사일을 동해상에 발사한 것에 맞서 전술용단거리 지대지 미사일인 에이태킴스(ATACMS)를 발사하고 있다. 합동참모본부 제공

북한이 24일 핵실험 및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유예(모라토리엄) 파기라는 ‘초강수’를 둔 것과 관련해 한국의 정권 교체기와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미·러 대립의 빈틈을 파고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우크라이나 사태에 집중하고 있는 미국이 북한에 전력을 집중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계산이 깔렸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미국과 대립 중인 중·러의 반대로 대북 추가 제재 추진이 어렵다는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관측된다. 북한으로선 ICBM 시험발사 재개라는 ‘레드라인’을 넘는 도발을 통해 향후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겠다는 의도로 분석된다.

북한이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을 향해 길들이기 또는 기선제압에 나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정권 교체기의 한국이 북한의 ICBM 시험발사에 체계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과 특히 대통령 집무실 이전 논란 등으로 군 당국이 어수선한 틈을 노렸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합동참모본부는 북한의 ICBM 발사에 맞서 동해상에서 현무-Ⅱ 지대지미사일 1발, 전술용단거리 지대지 미사일인 에이태큼스(ATACMS) 1발, 해성-Ⅱ 함대지 미사일 1발, 공대지 합동직격탄(JDAM) 2발을 발사했다.

군 당국이 맞대응 성격의 무력시위를 한 건 2017년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합참은 훈련 사진과 영상도 이례적으로 공개하는 등 대북 강경 대응 태세를 강조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북한 ICBM 발사는) 유엔 안보리 결의를 정면 위반함으로써 우리의 안보를 위협하는 중대한 도발”이라고 규탄했다. 북한의 모라토리엄 파기 속에서 외교부 업무보고를 받은 인수위는 ICBM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 없이 “비핵화 진전에 따른 남북관계 정상화 및 공동번영 추진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고 전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4일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센터에서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추정되는 장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것과 관련해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긴급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국제사회에 약속한 ICBM 발사 유예(모라토리엄)를 스스로 파기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직후 참모회의를 소집해 “당선인에게 오늘의 상황과 대응 계획을 브리핑하고, 향후에도 긴밀히 소통하라”고 국가안보실장에게 지시했다.

군 당국은 북한이 이날 쏜 미사일을 두고 신형 ICBM인 ‘화성-17형’과 2017년 11월 발사한 ‘화성-15형’ 등 여러 가능성을 상정하고 있다. 화성-15형을 재발사한 게 맞다면 최대 사거리가 당시 추산(1만3000㎞)보다 길어진 1만5000㎞를 훨씬 넘었을 것으로 분석된다. 이 사거리라면, 미국 본토 전역은 물론 아프리카·오세아니아·남미 일부 지역 등 전세계 주요 대륙이 모조리 북한 ICBM의 사정권 안에 든다는 의미다.

주한미군의 고공정찰기 U-2S가 경기도 평택의 주한미군오산기지 상공을 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는 북한이 지난해 1월 8차 당 대회에서 ‘무기체계개발 5개년 계획’을 통해 천명한 핵심 과업 중 하나인 ‘1만5000㎞ 사정권 내 타격 명중률 제고’와도 연결된다.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의 수중발사, 극초음속 무기 도입, 군 정찰위성 등의 과업들을 순차적으로 달성해 나가는 과정이라는 설명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김일성 생일 110주년(4월 15일) 당일에 발사했다가 실패하면 안 쏘느니만 못하는 상황이 되기 때문에 그 전에 추가 시험발사로 기술을 완성한 뒤 이를 김일성 생일에 자축할 수 있다”고 말했다. 4월에 한·미 연합훈련까지 예정돼 있어 한반도를 둘러싼 군사적 긴장이 고조될 것으로 우려된다.

북한 대외선전매체 려명은 이날 “무적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강화해나가는 것은 최중대 정책이고 목표”라며 “우리의 자주적 권리와 국익 수호”라고 강조했다.

김영선 정우진 기자 ys8584@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