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잘 먹고 갑니다.” 24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인근 한 해장국집은 뜸했던 단골들의 발길이 이어지며 북적북적했다. 이곳을 찾는 손님 대다수는 청와대 직원과 경찰이다. 20년째 장사를 해온 사장 조진숙(53)씨는 “오랜만에 찾아와 ‘잘 먹고 간다’는 인사를 건네는 청와대 직원들이 부쩍 늘었다”며 “용산으로 가기 전 즐겨 먹던 국밥을 마지막으로 한 그릇 하러 오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조씨는 “청와대 손님들이 떠나면 많이 그리울 것”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로 청와대 집무실을 옮긴다고 발표한 이후 청와대 인근 효자동 주민들은 청와대를 보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전직 대통령들을 비롯해 청와대 직원들과 길게는 50여년간 마주해온 이들에겐 집무실 이전이 정치적인 의미를 넘어 오랜 벗을 떠나보내는 기분이다.
청와대 정문 500m 앞에서 백반집을 운영하는 유옥희(74)씨는 집무실 이전 얘기에 눈물부터 왈칵 쏟았다. 유씨는 지난 46년간 매일 오전 6시 당직 근무를 마치고 나온 청와대 직원과 경찰의 아침밥을 책임져 왔다. 유씨는 “대통령 중에 우리 가게를 모르는 사람 하나 없고, ‘누님 가게 오면 늘 배부르게 먹고 간다’던 전직 대통령도 계셨다”며 웃어 보였다.
인근 주민들에게 청와대는 자부심이기도 했다. 상패제작소를 운영하는 정재희(51)씨는 1984년 청와대 맞은편 청운초등학교 자리에서 시작해 40년 넘는 세월 동안 청와대 직원이나 경찰 경비단에게 수여하는 표창·훈장 등 상패를 만들어 왔다. 그는 “교통 통제로 인한 불편함도 있었지만 그보다 청와대 인근 주민이라는 자부심이 있었고, 나랏일 하는 이들을 돕는 보람이 더 컸다”며 “내 인생의 반쪽이 사라지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정씨 가게엔 청와대와 함께한 현대사의 한 단면이 오롯이 담겨 있었다. 진열장의 금색 목각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1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에게 수여한 훈장이 새겨져 있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경호관에게 준 훈장도 눈에 띄었다. 전시용이지만 실제 수여한 것과 같은 상패들이다. 정씨는 상패들을 하나씩 소개하며 “더는 봉황 문양이 들어간 상패를 만들 일이 없어진다니 씁쓸하다”며 아쉬워했다.
청와대 직원들을 마주하면 아쉬운 마음에 작별 인사부터 건네기도 한다. 효자동에서 10년째 편의점을 운영 중인 한희숙(62)씨는 친한 청와대 직원들이 올 때마다 “짐 싸서 떠나는 거야? 이젠 못 보겠네”라는 얘기를 건넨다. 하루는 단골 손님 한 명이 큰 여행용 가방을 끌고 왔는데 마음이 철렁했다고 한다. 그는 “‘연수 받으러 가는 거니 안심하시라’며 웃는 손님을 보면서 잠시 안도했는데 이후에도 큰 가방을 든 직원이 보일 때마다 ‘이제 진짜 가는 건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철렁 내려앉는다”고 말했다.
세탁소를 운영하는 김복례(61)씨는 요즘 경호처 직원들 옷 관리에 더욱 신경 쓰고 있다. 지난 10년간 세탁해온 경호원들의 와이셔츠도 곧 추억으로 남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그는 “손님의 70%가 대통령 경호처 직원들이었다”며 “이분들이 떠나는 날엔 어떤 기분일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고 말끝을 흐렸다. 김씨는 칼 주름이 잡힌 와이셔츠를 조용히 옷걸이에 걸었다.
박장군 신지호 기자 genera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