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원복집’ 發 주거침입 판례 25년만에 변경 “식당에 몰카 설치, 주거침입 무죄”

입력 2022-03-25 04:05

상대방과의 대화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식당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하러 들어간 행위는 주거침입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비슷한 상황을 놓고 주거침입 유죄 결론이 내려졌던 이른바 ‘초원복집 사건’의 판례도 25년 만에 변경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24일 주거침입 혐의로 기소된 A씨와 B씨의 상고심에서 검찰의 상고를 기각하고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화물 운송·보관 업체의 부사장과 관리팀장으로 근무하던 두 사람은 2015년 1~2월 전남 광양의 식당에 침입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이들은 회사에 부정적인 기사를 보도한 기자에게 향응을 제공하고, 기자가 부적절한 요구를 하는 장면을 녹화하기 위해 음식점 주인 몰래 녹음·녹화 장비를 설치했다.

1심은 주거침입 혐의를 인정하고 A·B씨에게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음식점은 일반인의 출입이 허용된 곳이지만, 도청용 송신기를 설치할 목적으로 들어갔다면 식당 사장의 명시적 또는 추정적 의사에 반해 출입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2심은 “두 사람이 식당 관리자의 허락을 받고 방으로 들어갔다”며 판결을 무죄로 뒤집었다. 2심은 기자와의 대화를 녹음한 게 불법행위에 해당하지 않는 이상 A·B씨가 식당에 들어간 것 자체를 관리자의 의사에 반하는 것으로 보긴 어렵다는 이유를 들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결론도 같았다. 대법원은 “설령 영업주가 실제 출입 목적을 알았더라면 출입을 승낙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더라도 주거침입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주거침입죄가 성립하려면 ‘사실상의 평온 상태’가 침해됐다는 점이 인정돼야 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주인 허락을 받아 식당에 들어간 이상 사실상의 평온 상태가 침해된 것은 아니므로 처벌할 수 없다고 대법원은 봤다. 김재형·안철상 대법관이 별개 의견을 내긴 했지만 무죄라는 결론은 같았다.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로 형법 교과서에도 실렸던 초원복집 사건의 판례도 변경됐다. 1992년 김기춘 전 법무부 장관 등은 14대 대선을 앞두고 부산 남구 초원복국에 모여 김영삼 후보 당선을 위해 지역감정을 부추기자는 대화를 나눴는데, 이 내용은 통일국민당 관계자의 도청으로 알려지게 됐다. 검찰은 도청 장치를 설치한 이들에게 주거침입죄를 적용해 재판에 넘겼고, 대법원은 1997년 식당 주인이 도청 장치 설치 목적의 출입은 허용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유죄로 판결했다.

임주언 기자 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