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에 대비해 비상계획 마련에 착수했다. 미군을 비롯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직접 개입하는 방안까지 검토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뉴욕타임스(NYT)는 미 정부가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주도의 ‘타이거팀(Tiger Team)’을 구성하고 핵무기 등 러시아의 대량살상무기 사용에 대비하기 시작했다고 2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타이거팀은 특수 사안의 해결을 위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내에 구성되는 긴급 태스크포스(TF)를 뜻한다.
지난달 28일 구성된 이번 타이거팀은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 무기와 물자를 지원하는 서방 병력 등을 공격할 경우, 러시아가 몰도바와 조지아 등 이웃 국가로 공격 범위를 확대하는 시나리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의 난민 발생 등에 대한 대책을 검토한다.
특히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을 나토의 군사 개입 ‘레드라인’으로 설정하는 방안도 논의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의 한 고위 관계자는 러시아가 나토 동맹국을 겨냥하지 않고 우크라이나에서 소형 전술 핵무기를 쓰더라도 미국과 나토가 전쟁에 개입할 수밖에 없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다른 관리는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군사적 개입에 소극적이지만 개입을 촉발할 문턱(한계점)이 나타난다면 기존 입장을 뒤집을 것이라고 말했다.
핵심 쟁점은 화학, 방사능 구름 등 러시아의 공격 이후 주변국이 입을 부수적 피해를 나토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할 수 있는지 여부다. 이를 공격으로 여긴다면 30개 회원국의 집단적 군사행동이 가능하다. 미 의회 군사위원장인 잭 리드 상원의원은 “핵무기에서 나오는 방사능이 주변 나토 국가로 유입되면 나토 회원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할 수 있다”고 밝혔다.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 가능성은 전쟁 초기만 하더라도 비현실적으로 여겨졌지만 러시아가 한 달째 고전을 거듭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러시아를 계속 압박하면 세계는 핵 재앙의 급물살을 탈 수 있다”고 밝혔다. 서방 정보 당국은 궁지에 몰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전세를 바꾸려고 2차 대전 때 일본에 투하된 핵폭탄보다 위력이 작은 소형 전술핵을 쓸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벨기에 브뤼셀에서 24일 바이든 대통령 주도로 열리는 나토 정상회의에서도 핵무기, 생화학 무기를 비롯한 러시아의 대량살상무기 사용 우려가 주요 의제가 될 것으로 예고됐다.
임송수 기자 songst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