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첫 여성 국무장관… 평양서 김정일도 만나

입력 2022-03-25 04:02
매들린 올브라이트(왼쪽) 전 미국 국무장관이 2000년 8월 평양에서 가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의 회담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최초 여성 국무장관인 매들린 올브라이트(84) 전 장관이 23일(현지시간) 암으로 별세했다.

체코 프라하 이민자 출신인 올브라이트 전 장관은 11세 때 외교관이던 아버지와 함께 미국으로 넘어와 국무부 수장까지 올랐다. 유대계인 부친은 나치와 공산 정권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했다. 그녀의 할머니를 포함해 26명의 가족이 홀로코스트에서 죽임을 당했다. 그는 웰즐리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했고, 조지타운대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올브라이트 전 장관은 1984년과 88년 민주당 대선후보의 외교 고문을 맡으면서 정치와 인연을 맺었다. 빌 클린턴 행정부 1기에 유엔 주재 대사를 맡았고, 2기인 97년 국무장관에 취임했다. 미국 역사상 최초다. 당시 상원은 만장일치로 그의 인준안을 통과했다.

올브라이트 전 장관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확장을 옹호하고 발칸반도의 집단학살을 막기 위해 동맹의 개입을 촉구해온 인물이다. 미국의 적극적 개입주의를 옹호했다. 핵무기 확산 억제를 추구하며 전 세계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강화한 인물이었다는 평가도 받는다.

그는 특히 북한 비핵화 문제에 깊숙이 관여했다. 99년 미국이 이른바 대북 포용을 기조로 한 ‘페리 프로세스’를 발표하고, 대북 경제 제재 완화 조치도 끌어냈다. 올브라이트 전 장관은 2000년 7월 방콕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을 계기로 백남순 당시 북한 외무상과 회동해 북·미 고위급 간 교류에 물꼬를 텄다. 같은 해 10월 김정일 국방위원장 특사로 방미한 조명록과 적대관계 종식, 평화보장 체제 수립, 미 국무장관 방북 등 내용을 담은 ‘북·미 공동코뮈니케’ 발표를 이끌었다. 미국 장관으로 처음으로 평양 땅도 밟았다. 웬디 셔먼 미 국무부 부장관은 당시 올브라이트 전 장관 밑에서 대북정책조정관을 지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그녀의 손은 역사의 흐름을 뒤집었다. 모든 역할에서 맹렬한 지성과 예리한 재치로 미국의 국가 안보를 증진하고, 전 세계 평화를 증진했다”고 애도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그는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이라며 “별세에 가슴이 아프다”고 추도했다.

뉴욕타임스(NYT)는 그를 추모하며 “국제 문제에 대한 뛰어난 분석가”라고 평가했다. 그는 지난달 23일 NYT 기고문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궁지에 몰렸다고 느낀다면, 그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며 “우크라이나 침공은 역사적 실수가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