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인수위 업무보고 유예 빌미 제공한 법무장관 자중해야

입력 2022-03-25 04:03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23일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회의실에서 기자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박 장관은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폐지는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밝혔다. 연합뉴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24일 법무부의 업무보고를 유예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사법개혁 공약을 공개적으로 반대하자 전격적으로 보고 일정을 미룬다고 통보한 것이다. “무례하다” “분노를 금할 수 없다”는 격한 표현까지 쏟아냈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 인사권 행사에서 빚어진 신구 권력의 갈등이 국민의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법무부 행정을 놓고 또 터진 것이다. 지켜보는 국민은 답답하고 불안하다.

이런 일이 벌어진 원인으로 박 장관의 가벼운 처신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득표율 차이가 얼마이든 윤 당선인은 차기 대통령으로 국민의 선택을 받았다. 그렇기에 당선인의 공약에는 특별한 무게가 실린다. 설령 잘못된 공약이라도 국민과의 약속이다. 수정하려면 합리적인 이유와 절차가 있어야 한다. 정부 부처를 이끄는 장관이 함부로 반대하거나 조롱할 대상이 아닌 것이다. 더욱이 박 장관은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폐지 논란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그가 수사지휘권을 행사한 한명숙 전 국무총리 모해위증 의혹은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결론을 내린 사안을 다시 수사하라는 것이었다. 정치적 판단으로 사법권의 절차적 공정성을 위협했다는 평가가 적지 않았다. 이런 박 장관이 업무보고를 하루 앞두고 당선인의 공약을 공공연히 반대한 것은 인수인계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보기에 충분하다.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은 찬반이 첨예하게 갈라진 사안이다. 검찰을 신뢰하고 바라보면 수사지휘권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에 방해가 된다. 반대로 검찰의 자정 능력이 의심 받을 때는 꼭 필요한 제도적 장치다. 별건·표적 수사, 제 식구 감싸기 같은 검찰의 잘못이 근절됐다고 믿는 국민은 거의 없다. 게다가 윤 당선인이 검찰 공화국을 다시 만들지 모른다는 우려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인수위는 공약 이행 여부를 원점에서 다시 검토해야 한다. 정파적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의견을 수렴해 결론을 내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책임 있는 지위에 있는 사람들의 불필요한 언행과 정치권의 선동적 발언은 자제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