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주의 4대 이론가 중 한 명인 미국 마이클 윌저 교수는 1998년 출간한 ‘정의의 영역’에서 사회적 가치를 이렇게 정의했다. 사회구조에 따라 직접적으로 다뤄지는 권리와 자유, 권한과 기회, 소득과 재산 등 모든 가치를 통칭하는 용어. 선한 영향력은 이 사회적 가치의 ‘가치’를 높이는 요소가 된다. 한 사람 또는 집단의 생각이나 행동이 긍정적 방향으로 발전해 사회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게 선한 영향력이다. 러시아의 폭격으로 피란길에 오른 우크라이나인들을 취재하러 찾아간 루마니아 국경에서 선한 영향력이라는 개념이 성경과 충돌하는 걸 경험했다.
영하 9도의 혹한과 폭설에도 루마니아 북동부 수체아바주(州) 시레트 국경에선 불가리아·루마니아의 한인 선교사들이 부득이하게 우크라이나를 떠난 선교사와 협력해 피란민을 돕고 있었다. 루마니아 현지 교회와 연합해 난민 캠프를 운영하고 생필품을 차에 실어 우크라이나에 보내기도 했다.
그동안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나선 교회나 기독교 단체의 사역자를 만날 때면 건네던 “왜 세상에 알리지 않느냐”는 질문을 루마니아 국경에서 만난 선교사들에게도 했다. 예상대로 같은 답이 돌아왔다.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마태복음 6장 3~4절 말씀이다. 이 말씀은 그동안 교회의 선한 일이 자랑과 교만으로 변질되는 것을 차단하는 장치였다. 바로 충돌의 지점이다. 충돌이란 불편한 표현을 사용한 건 왼손조차 모른다면 세상에 어찌 선한 영향력을 전파할 수 있느냐는 개인적 의견 때문이다.
이런 충돌은 전에도 있었다. 2010년 아이티 대지진 때 한국교회는 여진 위험에도 현장에 달려갔다. 2019년 한국인 관광객 33명을 태운 유람선이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에서 침몰했을 때 한인 교회와 선교사가 유가족을 보듬고 수색을 도왔다. 그럼에도 한국교회의 섬김을 세상은 몰라봤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이 매년 발표하는 ‘한국교회 신뢰도’ 조사는 충돌에 대한 고민을 명쾌하게 풀이한다. 기윤실이 결과를 발표할 때마다 주목하는 해가 있다. 2009년은 천주교 불교에 밀려 매번 신뢰도 3위에 머물던 기독교(개신교)가 유일하게 2위에 올랐던 때다. 기윤실은 태안 기름유출 때 타 종교보다 기독교가 사회적으로 기여한 바가 컸다는 인식에 신뢰도가 올라갔다는 분석을 내놨다.
2007년 12월 태안 앞바다에서 기름유출 사고가 발생하자 1만 교회, 80만 성도는 복구에 동참했고 언론은 앞다퉈 그 선한 영향력을 소개했다. 이후 출범한 초교파연합기관인 한국교회봉사단은 국내외 재난구호와 자원봉사에 힘썼다. 최근 루마니아에 실사단을 파견, 긴급구호자금을 활용해 피란민을 돕고 우크라이나에 구호품을 보냈다. 역대 최장기 산불로 기록된 울진과 삼척 산불 현장에도 달려갔다.
기윤실의 2009년 조사는 한국교회에 대한 사회의 기대치가 반영된 결과다. 한국교회의 사회적 책임과 가치 창출에 대한 요구가 높아졌고 선한 영향력을 기대하게 됐다. 대중이 한국교회에 매긴 선한 영향력의 기준은 높았고 그에 맞는 역할과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가차 없이 비난의 화살을 날렸다.
코로나 시국은 한국교회에 대한 대중의 잣대를 명확히 보여준다. 남을 돌볼 여유가 없는 상황에도 한국교회는 소외계층을 돌보고 소상공인을 지원했다. 혈액 수급 비상 소식에 헌혈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왼손이 모르게 했던 그 선한 일은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전에 사라졌다. 반대로 방역을 지키지 않은 소수 교회 모습이 한국교회 전체의 모습이 됐다.
전쟁이 한 달 넘게 계속되고 있다. 한국교회와 기독교 단체의 구호 활동도 확장되고 있다. 루마니아 국경에서 맞닥뜨린 충돌의 지점에서 한국교회가 선한 영향력을 통해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동기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하며 내린 지극히 개인적인 해답은 이렇다.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은 몰라도 세상은 알게 하는 것.”
서윤경 종교부 차장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