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노트] 당신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으로!

입력 2022-03-25 04:05

나는 SF영화를 좋아한다. 2022년쯤엔 백 투더 퓨처2(1990)처럼 차가 하늘로 날아다니고, 제5원소(1997)에서처럼 아파트 베란다 문을 열면 비행 커피 트럭에서 커피를 사 마시는 아침을 상상했다. 바이센터니얼맨(2000)이 집안일을 해주고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처럼 일어나지도 않은 범죄를 예측해서 범죄 없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도 상상해 봤다.

1990년작 백 투 더 퓨처2에서 타임머신 들로리안이 안내한 미래, 2015년(그 당시엔 25년 후의 미래)에는 차가 날아다니고 버튼만 누르면 자동으로 사이즈를 맞춰주는 옷과 자동 신발 끈, 초 단위로 기상을 예측하는 시스템, 그리고 의학 기술의 발전으로 과거보다 오히려 더 젊어진 박사가 등장한다.

이즈음의 SF영화에서 그리던 미래는 첨단 기술의 무한한 발전과 그 안에서 인간성을 지키기 위한 사투, 그로 인한 지구의 황폐화가 가져오는 아포칼립스(종말)에 대한 두려움들이 내재되어 있었다. 영화 속 미래에 가슴이 두근거리던 나로서는 아직 차는 땅 위만 달리고 있고, 자동 신발 끈조차 없는 2022년이 다소 우리가 상상한 만큼 달라진 세상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잠시 고개를 들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보니 이런 상상들과는 너무 다른 지점에 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미 2년간 익숙해진 마스크를 쓴 내 모습은 거울을 볼 때마다 내 얼굴의 이목구비도 가끔 잊게 만든다. 지난 2년간 새로 알게 된 사람들끼리는 실제 얼굴을 알지 못한다. 가끔 마스크를 벗은 상대의 얼굴이 낯설어서 놀라는 건 우리 모두가 겪는 일상이 됐다.

마스크를 썼을 때 외모가 더 나아 보인다는 의미의 신조어 ‘마기꾼’(마스크+사기꾼)처럼 우리는 이제 만나는 사람의 얼굴조차 일부는 상상해야 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붐비는 곳은 1시간씩 줄 서서 기다려야 했던 세계적인 대도시들의 공항 이민국이 텅 빈 전경, 재택하면서 화상으로 회의를 하는 일도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진 지금,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낯선 광경들이 일상이 되어 있는 2022년이다.

하지만 기분 좋은 현재도 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지난가을 잠시 국경이 열리고 팬데믹이 끝날 것 같았던 10월 뉴욕에서 국제 에미상 시상식이 열렸다. 2016년에 ‘너의 목소리가 보여’(I Can See Your Voice)가 예능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른 이후 5년 만에 다시 ‘아이랜드’로 최종 후보에 올라 시상식에 참석하게 됐다.

5년 전 처음 레드카펫을 밟을 때 (PD는 만드는 사람이라 항상 카메라 뒤에 있으니) 이런 세계적인 시상식의 후보로 레드카펫에 서는 것 자체가 해본 적 없는 상상 중 하나였다. 그리고 5년이 지나 두 번째로 찾은 국제 에미상 시상식에서는 지난 5년간 상상치 못했던 변화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참석한 대부분 사람이 ‘너의 목소리가 보여’를 알 만큼 내 프로그램이 여러 국가에 포맷이 팔려서 몇 년째 방송 중이고, 레드카펫에서 인터뷰 요청들이 들어올 만큼 K팝과 한국의 콘텐츠들이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BTS가 빌보드에서 기록을 세우고, 기생충과 오징어 게임을 비롯한 한국 영화와 콘텐츠들이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며 주목받고 있는 지금 이 순간 또한 불과 몇 년 전에도 상상치 못했던 2022년 우리의 현재 중 하나일 것이다.

SF영화 속 상상과는 다른 2022년,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예기치 못한 상황은 우리를 전혀 다른 미래 세상에 데려다 놓았을지 모른다. 신냉전 시대와 전쟁, 그리고 글로벌 경제 위기라는 복잡한 변화를 맞고 있는 2022년의 세상, 마스크 속 얼굴조차 상상해야만 하는 세상이지만 어쩌면 상상력을 필요로 하는 이 세상이 우리를 때로는 더 달콤한 미래로 안내할지도 모르겠다. 항상 그래왔듯이 미래는 우리 상상력의 범주를 넘어설 것이다. 당신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으로!

이선영 CJ ENM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