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처럼 쓴 시… ‘단편소설 대가’ 카버 시집 국내 첫 출간

입력 2022-03-24 18:30 수정 2022-03-24 22:04

“…우리 모두, 우리 모두, 우리 모두는/ 우리의 불멸의 영혼을 구원하려 애쓰는데,/ 어떤 길들은 다른 길들보다 더 빙글빙글 돌고/ 종잡을 수 없다. 우리는 이곳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머지않아/ 본모습을 드러내기를.”

‘스위스에서’라는 제목의 다소 긴 시의 마지막 연이다. ‘취리히에서 제일 먼저 할일은’으로 시작되는 이 시는 젊은 시절의 스위스 여행을 묘사하는데 단편소설처럼 읽힌다.

‘가지를 통해’는 죽음에 대한 시다. 새들의 울음을 자신의 시간이 끝났음을 알리는 울음으로 듣는다. “창문 아래, 데크 위에, 누더기 같은 새들 몇 마리가/ 모이통에 모여 있다. 매일 와서 먹고 싸우곤 하는/ 그놈들인 것 같다. 시간이, 시간이,/… 당신 손을 잠시만 줘. 내 손을 잡아줘. 응, 그렇게/ 꽉 쥐어줘. 시간이여, 우린 시간이 우리 편인 줄 알았지./ 시간이, 시간이, 누더기 같은 새들이/ 운다.”

레이먼드 카버 시집 ‘우리 모두’에 수록된 작품들이다. 카버는 20세기 후반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로 ‘단편소설의 대가’로 불린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사랑하는 작가로 유명하다. 카버는 소설가로 이름을 알렸지만 평생 시도 썼다. 특히 1983년 ‘대성당’으로 큰 성공을 거둔 후에는 시 쓰기에 전념했다. 이번에 소설가 고영범의 번역으로 출간된 ‘우리 모두’는 83년부터 88년 사망할 때까지 쓴 시를 모은 것이다.

카버의 시가 국내 출간된 것은 처음이다. 시집에는 305편의 시가 실렸는데, 어떤 시든 툭 펼치면 술술 읽히고 금방 이해가 된다. 시의 주제는 가족, 일상, 자연, 예술, 죽음 등 다양하다. 하지만 자신의 경험을 쓰고, 실제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사용하고, 소설처럼 이야기를 담는 특성은 일관되게 나타난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더 많은 것을 말하는 미니멀리즘 기법을 대표하는 작가 카버는 소설을 쓰듯 시를 썼다. 그는 생전 인터뷰에서 “저는 소설과 시를 같은 방법으로 쓰고, 그 효과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고, “단편소설과 시는 단편소설과 장편소설보다 가까운 관계”라는 얘기도 자주 했다. 번역자는 “카버는 시 또한 이야기로 접근했다”며 “다만 그 이야기들은 예민한 순간들이 압축된 언어로 포착된 것이어야 했다”고 소개했다.

김남중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