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차기 한국은행 총재 후보로 지명된 이창용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담당 국장은 공인된 금융·거시경제 전문가다. 한국인 최초로 IMF 부총재급인 아태 국장을 역임한 이력도 이력이지만 국제기구와 학계, 정부기관을 망라한 드문 경험의 소유자다. 정권교체기에 신구 권력 간 알력 싸움이 있기는 하지만 이 후보자를 잘 아는 이들은 ‘신의 한 수’와 같은 인선이라고 입을 모은다.
1960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난 이 후보자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 로체스터대 경제학과 조교수와 세계은행 객원 연구원을 거쳐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하며 학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준구 서울대 명예교수와 공동집필한 ‘경제학 원론’은 지금도 경제학도들의 바이블로 꼽힌다.
2007년 12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참여는 이 후보자 인생에 변곡점이 됐다. 경제1분과 인수위원으로 참여한 뒤 2008년에 이명박정부 초대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다. 학계를 떠나 처음으로 정부기관에 몸담은 것이다.
이 후보자는 취임 후 곧바로 닥쳐온 위기 상황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메릴린치 등 대형 투자은행 3곳이 파산하면서 글로벌 금융위기 상황이 발생했다. 국내 금융시장도 불안해졌고, 경기는 침체 국면에 접어들었다.
당시 누구보다 열심히 대안을 찾아 나선 사람은 이 후보자였다. 하버드대 은사이자 재무부 장관을 지낸 로런스 서머스 교수의 인맥을 십분 활용해 미 재무부와 긴밀히 협업하며 위기 탈출에 앞장섰다. 덕분에 피해는 최소화했다. 2009년 0.8%까지 떨어졌던 경제성장률은 2010년 6.8%로 반등하며 회복했다. 이 시기 청와대에 재직했던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런 사람도 있나’ 할 정도로 조직 장악력이 있고 뛰어나며 열정적인 분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이겨내는 데 일등공신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평가했다.
관료직을 내려놓고 아시아개발은행(ADB)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거쳐 IMF 아태 국장을 맡은 그는 지난해 코로나19에 확진되며 은퇴까지 고민했다고 한다.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된 탓이다. 하지만 정부의 부름으로 향후 4년간 한은 총재 역할을 맡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
다만 재정건전성에 대한 그의 소신 등을 고려하면 50조원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 대규모 재정 확대를 공약한 차기 정부와 충돌할 우려가 있다. 이 후보자는 2020년 9월 자본시장연구원 콘퍼런스에 참석해 한국의 재정적자를 지적하며 정부의 과도한 지출 확대를 비판했다. 국제금융기구 고위직에 한국인이 부재해지는 상황에 대해 안타깝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또 다른 정부 고위 관계자는 “국제기구 고위직이 한 명 있으면 여러모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데 아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