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년을 최장수 근무한 한은맨’ ‘정권을 바꿔가며 첫 연임을 한 총재’.
이달 말 8년 임기를 마치는 이주열(사진) 한국은행 총재가 23일 유튜브 비대면 기자간담회에서 작별을 고했다. 이 총재는 송별사에서 “높은 물가 오름세가 상당 기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금융 불균형 위험을 줄여나갈 필요성이 여전히 크다는 점에서 통화정책의 완화 정도를 계속 줄여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표출된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더 확대돼 우려를 해소하지 못하고 떠나야 하는 아쉬움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이 총재는 재임 기간 76차례 금융통화위원회를 주재하면서 기준금리를 9차례 내리고, 5차례 올렸다. 취임 당시 2.50%였던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치인 0.50%까지 눌렀다가 1.25%까지 끌어올린 상황이다. 그는 취임 보름 만에 터진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 메르스 사태, 미·중 무역분쟁, 코로나19 확산 등으로 굵직한 사건을 맞아 기준금리를 빠르게 낮추고, 경기 회복세가 확인되면 금리 인상을 주저하지 않는 등 선제적인 대응에 적극 나섰다는 평가를 받는다. 때문에 이 총재가 ‘매파’인지 ‘비둘기파’인지 평가하기란 쉽지 않다. 이에 대해 이 총재는 “통화정책이 경기와 물가 흐름을 보고 금융 불균형 등의 상황에 맞게 금리를 운용한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지 태생적으로 매파와 비둘기파로 나누는 건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임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묻자 “2년 전 코로나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주요 기관장들과 긴박하게 협의하고 토론해 전례 없는 정책 수단을 동원했던 일과 이후 지난해 8월부터 다시 통화정책 정상화의 시동을 걸었던 일”을 꼽았다. 그가 지난해 8월과 11월, 올해 1월에 걸친 세 차례 기준금리 인상을 통해 선제 대응해 온 것은 다른 주요국 중앙은행의 모범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아울러 미국 캐나다 스위스 등 기축통화국 중앙은행은 물론 중국 인민은행과도 통화스와프를 체결하거나 연장해 우리나라 외환 안전망을 탄탄히 갖춘 점도 성과로 거론된다.
다만 이 총재가 조직·인사 혁신을 추진했지만 가시적 성과를 내지 못한 숙제는 후임 총재의 몫으로 남게 됐다. 이 총재는 후임에 지명된 이창용 국제통화기금(IMF) 국장에 대한 조언을 구하는 기자의 질문에 “학식, 정책 운용경험, 국제 네트워크 등 여러 면에서 출중하고 나보다 뛰어난 분이어서 조언할 게 없다”고 했다. 대신 “신뢰는 일관성 있고 예측가능한 통화정책에서 나타난다는 말을 후배들도 가슴에 새기길 바란다”고 답변을 갈음했다.
이동훈 금융전문기자 d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