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몽니인가, 생떼인가

입력 2022-03-24 04:10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촌철살인의 단어 구사로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어록을 남겼다. 몽니도 그 가운데 하나다. 순수한 우리말인데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받고자 하는 대우를 받지 못할 때 내는 심술’이라고 풀이돼 있다. 김 전 총리는 DJP 공동정부 출범 10개월 만인 1998년 12월 자신이 창당을 주도한 자유민주연합 중앙위원회에서 “때를 맞춰야 하고 그러고도 안 될 때 몽니를 부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대선 전 약속한 의원내각제 개헌을 이행하지 않으려하자 작심하고 견제구를 날린 것이다. 몽니가 ‘음흉하고 심술궂게 욕심 부리는 성질’이란 뜻으로도 쓰이지만 표준국어대사전 풀이를 따르자면 김 전 총리의 억울한 심정을 적확하게 드러낸 단어라고 할 수 있겠다. 약속을 뭉개려는 DJ를 겨냥한 JP 발언의 맥락은 충분히 수긍이 간다.

최근 대통령 집무실 이전 문제를 둘러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측의 행태는 몽니 같기도 한데, 어쩐지 석연치 않다. 윤 당선인 측은 취임일(5월 10일) 전까지 국방부 청사로 이전시켜 달라는 요구를 청와대가 거부하자 ‘대선 불복’이란 표현까지 써가며 불쾌해 하고 있다. 취임 전 이전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 됐는데도 윤 당선인은 ‘청와대에는 절대 들어가지 않겠다’고 했다. 취임해도 국방부에 집무실이 차려질 때까지 통의동 당선인 집무실에서 업무를 보겠다고 한다. 대통령이 멀쩡한 집무실을 비워두고 위기 대응, 경호, 외빈 접견 등 여러 면에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큰 임시 공간에서 지내는 희한한 상황이 벌어질 판이다.

차기 정부 출범에 협조해야 하는 건 현 정부의 책무지만 당선인 측이 새 대통령 집무실 설치를 밀어붙이는 것은 월권이란 지적이 적지 않다. 입주를 앞둔 새 주인이 이사 갈 사람에게 인테리어 공사까지 해 달라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당선인이 취임 후 차기 정부 책임 하에 추진하는 게 순리 아닌가. 다른 업무 인수인계로도 바쁠 시기에 왜 무리수를 고집해 분란을 자초하는지 답답한 노릇이다.

라동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