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포격에 씨 마른 연어·킹크랩… 한국 ‘밥상 물가’ 비명

입력 2022-03-26 04:08

남의 나라 일이 아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한국인 ‘밥상머리 물가’를 급격히 끌어올릴 조짐이 감지된다. 당장 미치는 영향은 유가 등 동시다발로 치솟은 물가 때문에 체감이 쉽지 않다. 러시아 상공을 경유해 수입하던 연어 가격이 급등한 정도가 눈에 띄는 부분이다. 하지만 전쟁이 장기화할수록 각종 먹거리 가격이 수직 상승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수입 농산물 가격이 많게는 배 이상 오를 거라는 전망도 있다. 국제사회 제재 기간에 따라 오는 7월 이후 전 세계에 농수산물 공급난이 올 수 있다는 우려도 덧붙는다.

‘품절’ 얘기까지 나오는 연어

일단 가장 먼저 눈에 띄는 품목으로 수산물이 꼽힌다. 25일 노량진수산물도매시장에 따르면 수입산인 연어와 킹크랩 가격 증가세가 눈에 띈다. 가장 최근 집계인 지난 7~12일 주간 평균 판매가격은 연어의 경우 ㎏당 2만1600원으로 지난해 평균 가격(1만1200원) 대비 92.9% 상승했다. 거의 배가량 뛴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이 없지 않다. 전주(2월 28일~3월 5일)만 해도 ㎏당 1만3100원에 거래됐기 때문이다. 킹크랩 가격도 뛰었다. 7~12일 주간 평균 판매가격이 ㎏당 7만2400원으로 지난해 평균 가격(5만7200원)보다 26.6% 올랐다.

다만 가격 상승 요인은 약간 차이가 있다. 연어는 러시아를 경유하는 항공편을 통해 주로 수입된다. 러시아 영공이 폐쇄되면서 우회 항로를 통해 수입되다 보니 물류비가 뛰어오르며 가격 인상분에 반영됐다. 세종시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자영업자 A씨는 “연어 가격이 갑자기 올라서 모듬회 등에 연어를 넣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와 달리 수입산 킹크랩은 러시아산이 주류다. 러시아가 지정한 수출제한 품목으로 엮이지는 않았지만 일정 부분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물류’ ‘공포’가 끌어올린 농산물

수산물과 달리 농산물은 물류비와 공포가 ‘쌍끌이’하며 가격을 끌어올리고 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발표하는 월별 세계식량가격지수는 지난달 140.7로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해당 지수는 2014~2016년 평균값을 100으로 잡고 이보다 높으면 가격 인상, 낮으면 가격 하락으로 평가하는 지표다. 전년 동월(110.6) 대비 20.7%나 급등한 부분이 두드러진다.

컨테이너 비용이 오른 점이 1차적으로 수입산 농산물 가격을 끌어올렸다. 국내 수입 물류비 지표로 쓰이는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지난 18일 기준 4540.31로 전년 동기 대비 배가량 올랐다. 여기에 전쟁 상황을 고려한 ‘정황’이 가격 인상 흐름에 기름을 붓는다. 대표적인 품목이 밀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주요 밀 수출국이다. 전 세계 수출량의 29% 정도를 차지한다. 미국 농무부(USDA)에 따르면 러시아는 올해 밀 수출량 전망치가 유럽연합(EU)의 3750만t에 이은 3500만t으로 세계 2위다. 우크라이나도 2420만t으로 세계 4위 규모를 자랑한다. 당초 전망대로라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밀 수출량은 전년 대비 각각 -4.10%, 7.35% 증감할 것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전쟁이라는 예기치 못한 변수가 끼어들면서 이 전망치가 바뀔 가능성이 커졌다.

밀을 주원료로 하는 품목 가격이 영향을 받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밀가루 가격은 전년 대비 13.6% 상승했다. 지난해 12월(8.8%)과 1월(12.1%)에 비해 가격 상승폭이 커졌다. 다른 품목도 영향을 받고 있다. 밀 가공품인 국수(28.1%)와 라면(10.3%), 부침가루(30.7%), 파스타면(13.2%) 가격 모두 전년 동월보다 큰 폭으로 뛰어올랐다.

밀 외에 옥수수와 해바라기씨유도 두 국가가 주산지다. 네덜란드 금융조합인 라보뱅크(Rabobank)에 따르면 러시아산 옥수수는 전 세계 수출량의 19%가량, 해바라기씨유는 80%가량을 차지한다. 이미 유럽에서는 해바라기씨유 품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의 경우 대체재가 있는 상황이라 단기 영향은 미미한 것으로 파악됐지만 언제 유럽과 같은 상황에 처할지 모른다.

전쟁 장기화 시 ‘공급난’까지

문제는 이 상황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경우 가격은 더 비싸진다. 라보뱅크는 러시아에 대한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가 다음 작물 수확 시기인 7월까지 지속된다면 밀 가격이 현재의 배까지 뛰어오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옥수수 가격 역시 30% 더 뛰어오른다고 내다봤다.

단지 비싸지기만 한다면 그나마 나은 편이다. 아예 농수산물을 구하지 못하게 될 가능성도 상존한다. 일단 수산물의 경우 한국에 수입되는 러시아산 품목이 적지 않다. 해양수산부 등에 따르면 비단 킹크랩뿐만 아니라 수입 대게는 100% 러시아산이다. 남획으로 동해에서 씨가 마르다시피 한 명태도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는데, 러시아산이 96.1%를 차지한다. 수입산 대구도 93.6%가 러시아산이다.

농산물 중에서는 사료용 밀과 옥수수가 우려되는 품목이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각각 오는 7월, 6월까지 쓸 수 있는 재고가 확보돼 있다. 하지만 이후로는 수급의 어려움을 고민해야 하는 처지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뉴욕지사 관계자는 “물류 부문 병목현상까지 더해지면 원재료 가격 부담뿐만 아니라 확보 자체가 어려울 가능성도 있다. 이에 대한 적절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심희정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