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복수와 증오

입력 2022-03-24 04:05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다. 어떤 사람이 낫을 빌려 달라고 하는 이웃의 부탁을 거절했다. 그런데 나중에 그 사람이 자기가 거절했던 이웃에게 찾아가 말을 빌려 달라고 했다. 그때 그 이웃은 “지난번에 네가 빌려주지 않았으니 나도 빌려주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것은 복수다. 이와는 달리 “그때 너는 빌려주지 않았지만 나는 너에게 빌려주겠다”고 한다면 이것은 증오다.

이 이야기가 나는 이해되지 않았다. ‘네가 빌려주지 않았으니 나도 빌려줄 수 없다’고 하는 태도가 복수라는 건 알겠다. 복수는 상대가 한 만큼, 한 대로 되돌려주는 것을 뜻하니까.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역사상 가장 오래된 법 원칙이라고 할 수 있는 이 개념은 모든 인간은 동등하다는 관념 위에 세워져 있다. 이 동등함의 원칙이 깨졌을 때 공동체의 안정을 위해 용인된 것이 복수다. 이 말속에는 과잉 복수에 대한 금지도 포함돼 있다.

알바니아 작가 이스마일 카다레의 ‘부서진 4월’에는 피의 복수를 명령하는 카눈이라는 관습법 이야기가 나온다. 이 관습법에 의하면 살해당한 사람이 있을 때 그 가문에 속한 친척 중에 누군가는 반드시 살인자를 찾아 죽여야 한다. 복수는 법에 의해 명령된다. 문제는 법이 규정한 바에 따라 복수를 행하는 순간 그는 살인자가 되고, 살해당할 위기에 놓이게 된다는 것이다. 준법 행위인 복수는 복수를 행하는 순간 범죄 행위가 된다. 이제 그는 누군가에게 복수당해야 한다. 그렇게 복수는 끝없이 반복된다.

끝없는 복수의 회로를 끊기 위해 인류는 개인의 사적인 복수를 금하고 국가에 맡겼다. 그래서 복수는 사라졌을까. 그런 것 같지 않다. 오늘날에는 국가기관을 이용해서까지 복수극을, 좀 더 교묘하고 기술적으로 되풀이하고 있다. ‘네가 빌려주지 않았으니 나도 빌려주지 않겠다’는 탈무드의 저 말은 바뀌기 힘든 인간의 본능을 손가락질한다. 아마 이 문장 뒤에 감춰져 있는 것은 ‘그렇게 하지 말라’일 것이다. 본능대로 하지 말고, ‘네가 빌려주지 않았지만 나는 빌려주겠다’고 말하라는 것. 그래야 복수의 회로를 끊을 수 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이 일화를 읽어가는 사람에게 그렇게 말하는 것을 증오라고 규정하는 문장은 여간 곤란하지 않다. 명쾌하지 않지만, 혹시 이런 추측이 가능할까? ‘너는 빌려주지 않았지만 나는 빌려주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네가 빌려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네’가 한 일을 상기시킬 뿐 아니라 ‘내’가 그 일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상기시킨다. 그럼으로써 상대방을 손아귀에 쥔다. 이 사람은 ‘네’가 한 대로, 한 만큼 하지 않지만, 하지 않음으로써 복수를 철회하는 것이 아니라 복수를 연기, 혹은 쌓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복수를 했다면 어쩌면 가능할 수도 있는 관계 회복의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한다. 네가 한 것처럼 하지 않겠다고 함으로써 나는 너와 같지 않다는 것, 나와 다른 종이란 것을 선언한다. 상종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다른 종에게 필요한 것은 상종이 아니라 혐오, 즉 증오다. 증오는 법이 금하고 있는 과잉 복수에 해당된다. 어떤 증오는 용서처럼 보인다. 혹은 용서를 위장한다. 그래서 무섭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해본다. 만일 이 사람이 처음에 이웃으로부터 낫을 빌려 달라는 부탁을 받는 입장이었다면 어땠을까? 이웃과는 달리 낫을 빌려줬을까? 단정하기 어렵지만 “너는 빌려주지 않았지만…” 하고 굳이 그 사실을 꼭 집어서 말하는 것을 보면 빌려주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추정하게 된다. 흔쾌히 낫을 빌려줄 사람의 언어라고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탈무드의 이 이야기는 빌려주고 빌리는 이야기가 아니라 말에 대한 교훈인 것 같다. 이 사람의 말이 증오인 것은, 같은 상황이라면 자기도 범했을 것이 뻔한 상대방의 잘못을 크게 부각하고 자기는 그런 잘못을 범하는 사람이 아닌 것처럼 꾸미기 때문이 아닐까.

상대방으로부터 거절당한 기억만 마음에 품지 말고 거절했던 기억도 했으면 좋겠고, 부탁받을 입장이 아니어서 거절한 적이 없다고 해도 그런 성정을 가졌다는 점에서 피차일반이라는 사실을 마음에 새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정권이 바뀌는 환절기에 하게 된다. 다 아는 것처럼 환절기는 계절의 성격이 바뀌는 시기라 공기와 날씨가 유난히 불안정하다고 한다. 이럴 때 특히 서로 조심해야 한다.

이승우 (조선대 교수·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