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만큼 사람을 울리고 웃기는 인류 발명품이 있을까. 천문학적인 돈을 소수 일당에 몰아준 대장동 사건은 용서 못 할 공분의 대상이다. 반면 평생 김밥, 떡볶이를 팔던 할머니들의 장학금 기탁 소식 등이 전해질 때는 사람들의 마음도 더불어 넉넉해진다.
요즘 국내 4대 은행이 임직원의 작년 평균 연봉이 1억원을 넘었다는 이유로 빈축을 사고 있다. 은행들은 열심히 일해 사상 최대 성과를 달성한 데 따른 대가라고 항변한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로 자영업자 등 이자를 갚기도 힘든 서민의 현실과 대비되며 예대금리차를 늘리는 손쉬운 방법으로 배를 불려왔다는 비난이 쏟아진다. 연간 수조원 영업이익을 올려도 은행 주가가 수십년간 바닥을 헤매는 등 은행업이 후진성을 면치 못하는 것도 이런 배짱 영업의 소산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예대금리차 정기공시를 밀어붙이려는 것은 국민 돈으로 얌체 영업하는 고질병을 척결하겠다는 선언이다.
2000년 전 예수가 예루살렘 성전 앞 환전상을 내쫓은 것은 고리대금업을 서민사회를 좀먹는 죄악으로 봤기 때문이다. 예수는 나아가 제자들에게 어려움에 처한 이들에게는 이자도 받지 말고 거저 주라 하신다. ‘너희도 언젠가는 도움을 받는 처지가 될 수 있다’는 역지사지의 이웃사랑 정신이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침공을 한 달 가까이 버티며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곤경에 빠트린 것은 세계에서 답지하는 이런 ‘선한 돈’의 위력이 한몫하고 있다. 특히 투기자산 오명을 쓴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가 독지가들의 부조 수단으로 각광을 받는 점이 흥미롭다. 전쟁으로 한시가 급한 상황에서 송금에 3~4일 걸리는 법정화폐와 달리 블록체인 기술로 실시간 송금이 가능한 데다 수수료가 없어 기존 화폐의 대안이 될 가능성을 제시했다.
우리 조상들이 척박한 농촌에서 가난을 견뎌 올 수 있었던 원동력도 예수의 역지사지 이웃사랑과 상통하는 품앗이 전통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이다. 품앗이는 일상생활에는 경조사 축의금과 부조금 형태로 정착됐지만 1998년 외환위기처럼 국가적 비상시에는 금 모으기 운동으로 승화되며 국민을 단결시켰다. 우리 국민이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국난에 처한 최강국 미국에 성금을 모아 전달한 것 역시 금 모으기 정신의 연장선이다.
그런데 요즘 유튜브와 윤 당선인의 배우자 김건희씨를 응원하는 ‘건사랑 카페’ 등에는 금 모으기와 유사한 자발적 모금운동 바람이 불고 있어 관심을 끈다. 취임일에 청와대를 국민에게 돌려주고 용산 시대를 열어 국민과 소통하겠다는 계획이 안보를 이유로 내세운 현 정권의 예비비 조기 집행 불허로 무산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됐다. 건사랑 회원들은 기획재정부가 추산한 집무실 이사비용이 497억원이지만 당선인의 원활한 업무를 도와야 한다며 목표액을 2000억원으로 늘려 잡았다. 집무실 이전 차원을 넘어 대통령으로서 성공을 염원하는 후원 성격도 감안된 듯하다. 일부 회원은 국민의힘 중앙당 후원회 은행 계좌까지 공개하며 자발적인 후원 독려와 함께 국민의힘에 공식 모금 계좌를 열라고 압박하고 있다.
유튜버 커뮤니티엔 1조원대 이전비 모금운동 제안도 나왔다. 정부 예산이 들어가는 사업에 사적 모금이 불가능하다는 답변에 ‘윤석열 펀드’를 만든 뒤 취임 후 정부에서 변제받아 법정이자까지 돌려주면 된다는 대안도 제시됐다. 취임 후 남는 금액은 자영업자 지원 펀드로 발전시키자는 등 아이디어가 만발하고 있다. 국민의 자발적 위기 돌파 DNA가 제왕적 권위를 탈피하겠다는 새 대통령의 소통 공약과 시너지를 발휘해 국민화합으로 이어질지, 지지자들만의 후원에 그칠지 결과가 궁금하다.
이동훈 금융전문기자 d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