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교회’라는 말처럼 모호한 단어도 없지만 그래도 거기서 우리가 배울 점이 많다. 3세기 문헌인 히폴리투스의 ‘사도전승’을 보면 교인이 되고 싶다고 다 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교인이 되려면 우선 깐깐한 문답 과정부터 시작해 직업이 합당치 않거나 말 한번 잘못하면 곧바로 퇴짜 맞을 수도 있었다.
교육 기간도 그렇다. 심사를 통과하면 최소 3년, 길게는 5년간 매일 아침 교회에서 말씀 공부 시간에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했다. 3년 공부했다고 자동으로 세례받는 것도 아니다. 부활절을 앞두고 심사를 치르는데 두드러진 삶의 변화가 없다고 판단되면 3년 고생했어도 그것으로 끝이었다.
이렇게 선별된 예비자들은 부활절 새벽까지 다시 일주일간 특별 과정을 거치게 된다. 소위 고난주간이라고 부르는 이때, 매일 귀신을 쫓는 구마(驅魔) 의식을 치러야 했다. 성목요일이 되면 선발된 세례 예비자들은 목욕으로 몸을 정결하게 하고 금요일엔 금식하고, 토요일 오후가 되면 한 번 더 성대한 축귀 의식을 치른다.
축귀 의식이 끝나면 목회자는 예비자 얼굴에 숨을 불어넣고 이마와 귀 코에 십자 표시를 해줬다. 토요일 저녁이 되면 세례 예비자와 교인들은 모두 지정된 샘터나 흐르는 물가 옆에 모여 밤새 기도하며 때가 차길 기다렸다. 드디어 수탉이 우는 새벽이 되면, 목회자는 먼저 물로 들어가 기도하고 세례를 준비한다. 흐르는 물이나 샘이 없다면 물을 떠다 하기도 했다.
이제 세례받을 사람 차례다. 이들은 우선 옷과 장신구를 모두 벗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모습으로 교인들 앞에 서게 된다. 그러면 교인 대표는 기름을 그릇에 부어 하늘을 향해 감사 기도를 올린 뒤 한 번 더 구마 의식을 행하고 세례 예비자 몸에 기름을 발라줬다. 교인들 앞에서 옷을 벗고 몸에 기름을 바르는 일을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지만 당시 교회에선 입교 예비자가 세속의 옷을 벗고, 세속을 향한 관심과 충성이라는 오랜 세월의 축적물을 제거하는 의식으로 받아들였다.
이로써 입교자들은 사탄과 절교했고 세례의 모든 준비를 마치게 된다. 이 과정이 끝나면 예비신자는 물로 걸어 들어가 기도하며 세례의 시간을 경건하게 기다린다. 이어서 교회의 대표인 목회자는 그에게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었다.
세례자가 물에서 나오면 장로는 다시 그의 머리에 기름을 부은 다음 하얀색의 새 옷을 입혀 교회 공동체 안으로 들어가게 했다. 기름 붓는 도유 의식은 세례를 통해 왕 같은 제사장이 되었다는 표징이다. 이렇게 세례받은 사람은 교회에 들어가 부활절 아침 예배에 참여하게 되는데 드디어 다른 모든 신자와 함께 주기도문으로 기도하고 평화의 인사를 나누며 성찬에 참여할 수 있었다.
당시 성찬은 오늘의 것과 약간 다르다. 이들은 빵과 물을 섞은 포도주 잔에 각각 감사의 기도를 드린 뒤 잔에 우유와 꿀을 섞어 먹고 마셨다. 포도주에 물을 섞는 건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그리스도와 물로 세례받은 그리스도인이 하나가 된다는 일종의 상징이었고 우유와 꿀은 출애굽 해서 완전한 가나안, 젖과 꿀이 흐르는 새로운 나라에 들어가게 됐다는 의미였다. 이로써 이들은 완전한 약속의 땅 가나안의 새롭고 거룩한 가족이 됐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이 당시만 해도 교인이 되면 혜택은 고사하고 예비 사형수가 되는 박해의 시대였는데 도대체 무엇이 사람들을 교회로 끌어당겼을까. 오늘 이 시대 우리의 교회는 어떤가. 오늘 우리의 교회도 죽음의 공포를 넘어서게 만드는 매력이 있을까. 아니면 제 발로는 문턱도 못 넘을 곳인가. 오늘의 교회는 무엇을 잃어버렸나.
최주훈 목사(중앙루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