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이 이제 전쟁범죄 수준에 이른 러시아군의 무차별 민간인 공격 양상으로 전개되면서 인도주의적 위기를 맞고 있다.
동남부 전략거점 마리우폴에서는 이미 민간인 주거시설 대부분이 파괴되고 식량과 물마저 공급선이 끊겨 도시에 남은 주민들이 아사 직전까지 내몰렸다. 전쟁 초기 군사시설 타격에 집중하던 러시아군은 모든 화력을 총동원해 우크라이나 주요 도시의 민간인 시설을 맹폭하는 전략으로 전환했다. 사방을 포위한 마리우폴에 이어 수도 키이우, 제2 도시 하르키우 등지에 대해서도 장거리미사일까지 동원해 민간인 다중이용시설을 공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21일(현지시간) “교착상태에 빠져 되레 우크라이나군의 반격까지 받고 있는 러시아군이 민간인 시설까지 공격하는 ‘B플랜’ 전략으로 전환하고 있다”면서 “이는 우크라이나 국민의 공포를 자극해서라도 승리하겠다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조급증이 낳은 결과”라고 보도했다.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정부와의 협상에서 합의했던 마리우폴의 인도주의 피란 통로까지 공격해 수많은 민간인 사상자를 낳고 있다. 또 우크라이나 내 안전지대로 피신하려는 피란민을 러시아 점령지인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과 루한스크인민공화국(LPR)으로 강제 압송하고 있다.
신문은 “지금까지 수천명의 부녀자와 어린이들이 러시아군에 의해 러시아 점령지와 러시아 지역으로 압송됐다”면서 “집속압력탄 등 국제협정에 의해 민간인 대상 사용이 금지된 폭탄을 발사해온 러시아군의 행위는 이미 전쟁범죄 수준에 이르렀다”고 전했다.
러시아군은 이날 하르키우 인근 지역에서 또 다른 잔혹행위를 벌였다. 국제 인도주의 단체와 유엔기구 등이 주도한 하르키우 주민들을 위한 식량 및 식수 공급 차량을 공격했다.
앞서 러시아군은 키이우의 대형 쇼핑몰에도 집중 폭격을 감행했다. 다행히 공격 시간이 밤늦은 시간이고 전시라 쇼핑객들이 별로 없어 큰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쇼핑몰은 뼈대만 남은 채 완전히 파괴됐다. 건물 잔해로 유추해보면 쇼핑몰 공격에 사용된 포탄과 미사일이 민간인에게 사용해선 안 되는 집속탄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게 군사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처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군과의 직접 교전보다 대도시 민간인 거주지역 무차별 공격에 집중하는 것은 20여일째 진전이 없는 전황에 따른 전략 수정으로 해석된다.
서방 언론들은 외교·안보 전문가들의 분석을 인용해 “수도 키이우와 흑해 연안 오데사에 대해 집중포위 전략을 구사해온 러시아가 오히려 이 일대에서 우크라이나군의 강력한 반격에 엄청난 손실을 입자 장거리에서 도시를 무차별 폭격하는 전략으로 궤도 수정을 한 것”이라고 전하고 있다.
NYT는 “모든 전선에서 교착상태에 빠진 위기 상황에 푸틴 대통령은 서슴없이 전쟁범죄와도 같은 민간인 공격 시나리오를 짠 것으로 보인다”면서 “미국을 비롯한 서방은 이런 러시아의 전략 수정에 더욱 우크라이나 지원 대오를 단단히 구축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또 이날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 최고경영자(CEO) 미팅 연설에서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서 생화학무기 사용을 고려 중인 명확한 징후가 포착됐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지는 않았다.
신창호 선임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