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재판이란 제도가 근래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원격영상재판에 관한 특례법은 26년도 더 된 1995년 12월 제정됐다. 재판 당사자와 증인 등이 교통 불편 등 문제로 법정에 직접 출석하기 어려운 경우에 대비하자는 취지다. 그러나 당시로서는 한계가 뚜렷했던 기술력 문제와 맞물려 영상재판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후 이 특례법은 운영비 등 예산 부족 문제로 2001년 4월까지 순차 중단됐다. 다만 일련의 법 개정을 통해 영상재판 활성화를 위한 시도는 이어져 왔다.
코로나19 사태가 2년 이상 이어진 현재 영상재판은 다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언택트 시대’를 맞아 영상재판의 필요성이 부상한 것이다. 유례없는 감염병 확산 사태는 재판 접근성을 떨어뜨렸고, 재판 당사자들은 재판 지연에 따른 불편을 호소했다. 법원행정처 통계에 따르면 2020년 전국 법원의 영상재판 실시 건수는 257건에서 지난해에는 697건으로 증가했다. 올해 영상재판 실시 건수는 1월과 2월 두 달 동안 390건을 기록했다. 일부 오차를 감안해도 영상재판 실시율이 크게 올라간 셈이다.
대법원도 그간 영상재판 활성화를 독려해 왔다. 법원행정처는 지난해 4월 영상재판 편의 증진을 위해 모든 재판부에 영상법정을 개설했다고 밝혔다. 법원 청사 공간에 따른 제약 없이 재판을 진행하고, 증인 등 재판 관계자들의 참석률을 높이겠다는 의도다.
이 같은 움직임은 최근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법원행정처장 및 각급 법원 법원장 40명은 지난 18일 전국법원장회의에서 영상재판 실무 운용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영상재판은 사법부 본연의 역할을 유지하고, 중단 없는 재판을 실현하기 위해 계속해서 활성화시키고 발전시켜 나가야 할 제도”라며 “이제 코로나19 감염병과 같은 재난상황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국민의 사법접근성 향상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한 법적 기틀도 어느 정도 마련된 상태다. 지난해 11월 18일 민사소송법과 형사소송법이 개정되며 영상재판 활용범위가 확대됐다. 민사재판에서는 변론기일 심문기일 조정기일 증인신문 등 거의 대부분 절차에서 영상재판 활용이 가능하다. 형사재판의 경우도 공판준비기일과 증인·감정인 심문, 구속이유 고지 등에 대해선 영상재판이 허용된다. 지난해 12월에는 형사재판에서 해외에 거주하는 외국인 피해자를 원격으로 증인신문해 해당 피고인에게 유죄를 선고한 국내 첫 사례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전체 재판 대비 영상재판이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고 보기는 여전히 어려운 편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아직까지는 시작 단계다. 재판부에서도 익숙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평가했다.
일선에서는 영상재판의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보이는 이들도 아직 있다. 영상재판은 현장감이 떨어지는 만큼 오히려 법원이 그간 강조해오던 공판중심주의에 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 절차가 복잡한 형사사건에서 영상재판이 피고인의 방어권을 보장하기 어렵고, 증인신문 등 절차가 지속성을 갖추기엔 무리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 현직 법관은 “법정중심 변론주의, 공판중심주의도 잘 정착되지 않았는데 영상재판 활성화가 가능할지 의문”이라며 “복잡한 형사재판에서 영상재판으로 증인신문 등 절차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 법관은 “(영상재판이) 피고인의 기본 권리 중 하나인 판사 대면권을 침해할 소지도 있다”고 덧붙였다. 지방의 한 부장판사는 “재판은 당사자에겐 아주 중요한 일인데 법정에 나와 판사에게 직접 하소연하고 싶어 하지 않겠냐”고 지적했다.
반면 비대면 화상 시대가 본격화되는 현재 법정 출석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의 낭비를 생각하면 영상재판이 장려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한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영상재판은 단순히 기록을 보는 것과는 달리 판사가 직접 보고 느낄 수 있고, 한국처럼 IT기술력이 발달한 나라에서는 큰 문제가 없다”며 “국민들이 법정에 안 나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이점이다. 다른 결점이 있더라도 개선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영상재판이 재판 접근성을 높인다는 장점은 있지만, 활성화에 있어 아직까지 어느 정도의 한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대표적으로 법관이 공판정에서 직접조사한 증거만을 재판의 기초로 삼을 수 있다는 ‘직접주의’를 위배할 소지가 있다는 점과 제3자가 카메라 시야 밖에서 증언을 유도할 가능성이 존재하는 등 보안 문제가 꼽힌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영상재판과 대면재판의 적절한 균형점을 모색해 소송유형별, 소송단계별로 적절한 재판방식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성영 기자 ps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