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어떻게 전쟁을 끝낼 것인가

입력 2022-03-23 04:08

지난달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이 한 달이 됐다. 21세기에 치러지는 전쟁의 모습은 과거와 다르다. 가장 놀라우면서도 익숙해지지 않는 점은 이 처참한 전쟁을 거의 실시간으로 전 세계인이 지켜보고 있지만 전쟁을 끝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며칠 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전쟁의 정당성을 호소하는 연설 장면을 봤다. 이에 맞서 결사항전을 다짐하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모습도 영상을 통해 확인했다. 전쟁의 당사자뿐만 아니라 희생자의 모습도 매일 생중계된다.

수도 키이우 인근 도시인 이르핀을 겨냥한 러시아군 폭격에 아내와 자녀를 잃은 가장의 절규가 들린다. 키이우에선 한밤중 폭격으로 쏟아져내린 유리 파편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생후 6주 된 아기를 지켜낸 엄마의 소식이 전해졌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피란길에 오른 소년의 모습도, 파편에 맞아 싸늘하게 식은 아기 앞에서 주저앉아 오열하는 부모와 의료진의 모습까지 전쟁의 민낯을 매일같이 보고 있다. 많은 이들이 함께 아파하고 도우며 인류애를 발휘한다. 하지만 동시에 전쟁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지켜보면서도 무감각한 사람들의 모습은 인간이란 존재에 대한 회의를 품게 하기도 한다.

얼마 전 우크라이나에서 17년간 살면서 한글학교에서 현지 청년들을 가르치고 기독교를 전하다 급거 귀국한 분을 만났다. 그는 현지에서 아무것도 챙기지 못한 채 두려움에 떨며 한국에 들어왔고, 다음 날 필요한 물품을 사러 대형마트를 찾았던 얘기를 들려줬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언제 죽을지 모를 공포 앞에 서 있는데 허리띠부터 신발까지 필요한 모든 물건이 있는, 평온한 대형마트에서 혼자 속에서 끓어오르는 울음을 참기 어려웠다고 했다.

그는 러시아의 일방적인 학살 소식을 한국인들이 보면서도 무심한 모습에 놀랐다고 했다. 게임과 영화 속 이미지에 익숙한 탓인지 자신을 기독교인이라고 말하는 사람조차도 전쟁을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모습에 분노가 치밀었다고 했다. 그의 현지 이웃은 피란길에 어머니를 잃고 시신을 낯선 땅에 묻었다고, 딸처럼 생각했던 여학생은 항구도시 마리우폴에 들어간 지 9일째 연락 두절이라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엔 이미 울음이 한가득이었다.

그는 여러 교회와 이웃들의 후원금을 들고 21일 폴란드로 떠났다. 우크라이나 접경지에서 현지인을 통해 트럭을 섭외하고, 구호물품을 실어 우크라이나로 들여보내기 위해서다. 우크라이나 이웃들이 그에게 요청한 리스트에는 당장 밀가루와 라면 같은 식량부터 두꺼운 양말, 속옷, 수건, 각종 의약품 등 생존에 필요한 물품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그가 떠난 다음 날 파이낸셜타임스 등 외신들이 전한 예상 시나리오를 찾아봤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평화 협정 체결, 러시아 내부의 쿠데타 반발 등 극적인 방법도 언급됐지만 가장 우세한 전망은 이 전쟁이 수개월간 이어지리란 것이다.

‘어떻게 전쟁을 끝낼 것인가.’ 무기력한 마음에서 동명의 책을 꺼내들었다. 러시아를 대표하는 작가 레프 톨스토이가 1904년 발발한 러·일전쟁을 보면서 끝없는 살육에 분노해 기고한 글을 담은 책이다. 평생 전쟁과 죽음, 종교에 대해 고찰했던 기독교인이자 평화주의자로서 그가 내놓은 답은 이렇다. “사람이 초래한 재난, 특히 가장 무서운 전쟁을 끝내는 데 가장 유효한 방법은 국가 간의 외교적 수단이 아니라 각 개인의 양심에 호소하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왜 태어난 것인가, 무엇을 해야만 하나 하고 자문하라’는 것이다.” 톨스토이의 답이 누군가에겐 공허하고 무용하게 들리겠지만 나는 이 문장에 작으나마 희망을 걸어보고 싶다.

김나래 온라인뉴스부장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