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에 숨은 주민·보육원 아이들 안전한 장소로 옮겨… 그럼에도 우리는 희망을 꿈꾼다”

입력 2022-03-23 03:02
우크라이나 키이우 필라델피아교회 지하에 몸을 숨기고 있던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지난 18일(현지시간) 서부 지역으로 향하는 피란 차량에 올라 운전자와 함께 밝은 표정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쿠시니르 목사 제공

공습 사이렌이 울리고 폭발음이 들렸지만 멈출 수 없었다고 했다. 지하에 숨은 주민 70명과 300여명의 보육원 아이들은 안전한 장소로 옮겼고 병원과 지역교회에 식량도 공급했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에서 아나톨리 쿠시니르 목사가 보내온 편지엔 지난 17~18일 일어난 일들이 적혀 있었다. 그는 러시아가 침공하기 전까지 우크라이나 복음화를 위한 초교파 단체 POKLIK협회를 이끌었다.

쿠시니르 목사는 22일 왓츠앱 통화에서 “전도용 인쇄물을 만들어 12년간 매년 300만~900만 가구에 배포했는데 이제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다”며 “지난 3주간 이동한 거리가 7000㎞”라고 전했다. 그는 “(오늘은) 리비우에 있고 우크라이나 최서단 자카르파타주로 이동했다가 내일은 리우네에 있을 예정”이라고 했다. 협회 스태프도 키이우 자카르파타주 흐멜니치키주 리우네시와 슬로바키아 헝가리 이탈리아로 흩어져 동역하고 있다.

지난 17일 쿠시니르 목사는 크멜니츠키주에서 감자 통조림 에너지바 등을 실은 차량을 끌고 키이우 필라델피아복음주의교회에 도착했다. 이 교회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피란을 돕고 식량을 공급하는 본부다. 쿠시니르 목사는 “도착한 날에도 시 외곽 지역교회 성도들이 찾아와 음식을 받아갔다”면서 “사람들을 안전한 곳으로 이송하는 것도 우리 일이다. 2대의 버스와 5대의 밴으로 호송하고 있다”고 전했다.

5대의 밴은 다음 날 필라델피아복음주의교회 지하에 숨어있던 70여명을 태우고 서부 지역으로 이동했다. 버스 2대는 지토미르 지역 보육원으로 출발, 300여명의 아이들을 안전한 장소로 옮겼다. 키이우의 병원과 빈민가인 비트리아니호리 지역 주민에게는 음식을 전달했다.

사역 중에도 러시아군 공격은 계속됐다고 한다. 쿠시니르 목사는 “18일 아침 공습 사이렌이 울린 뒤 곧바로 폭발음이 들렸다. 교회 건물이 흔들리고 벽 모서리에 금이 갔지만 우리는 흩어지거나 숨지 않고 각자 역할을 수행했다”고 말했다. 쿠시니르 목사는 피란길 차량 안 사람들의 사진도 공유하며 “우리는 희망을 꿈꾸고 있다. 마음의 상처가 큰 이들이 치유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며 한국교회에 요청했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