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홀 된 대통령 집무실 이전
촌각을 다툴 시급한 사안인가
이로 인해 민생은 뒷전으로 밀려
논란 잠재울 속도 조절 필요해
청와대 활용 방안도 고민해야
소통은 심리적 거리에서 나와
촌각을 다툴 시급한 사안인가
이로 인해 민생은 뒷전으로 밀려
논란 잠재울 속도 조절 필요해
청와대 활용 방안도 고민해야
소통은 심리적 거리에서 나와
아직 20대 대통령선거가 끝나지 않은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대선이 끝난 지 보름이 되어 가는데 공수의 주체가 바뀌었을 뿐 여야는 여전히 전쟁 중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 건으로 촉발된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의 충돌은 대통령 집무실 이전 문제를 둘러싸고 전면전으로 확대되는 모양새다. 대선 후 관례라고 생각했던 허니문은 박물관의 유물이 됐다.
광화문 시대. 좋다. 새로움이 느껴진다. 국민과의 소통 강화라는 명분도 있다. 그렇기에 광화문 시대를 공약한 대통령들이 적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그랬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도 광화문 시대를 공약했다. 바로 행동에 옮길 만큼 각오가 남다르다. 역대 어느 대통령도 실천하지 못한 약속이 꼭 이행되길 바라는 여론 또한 비등하다.
그러나 대통령 집무실 이전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급하게 서두를 일은 더더욱 아니다. 단순히 대통령 집무공간을 옮기는 게 아니다. 국가 중추시설을 이전하는 중대사다. 꼼꼼하고 세밀하게 고려해야 할 사안이 하나둘이 아니다. 당선인도 광화문시대를 호언장담했다 이것저것 따져보니 ‘재앙’이라는 판단이 서 용산으로 방향을 튼 게 아닌가.
청와대는 본관과 비서실 경호실 춘추관 영빈관 등 부속건물로 이뤄져 있다. 대통령 전용공간인 본관은 집무실 접견실 회의실 주거실 등이 갖춰져 있다. 역대 대통령이 ‘탈청와대’를 외친 주된 이유는 백악관과 달리 대통령의 공간인 본관과 참모들의 공간인 비서실이 분리된 청와대 구조에 있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 신축된 본관은 권위주의의 잔재다. 왕의 권위를 담았던 경복궁 근정전처럼 대통령 권위를 부각하는데 집중한 나머지 소통의 측면이 간과됐다. 다시 짓는다면 절대 이렇게 짓지는 않을 거다.
사람만 옮겨 간다면 시빗거리 생길 일이 별로 없다. 청와대엔 지하벙커로 불리는 위기관리센터도 위치한다. 역대 정권이 막대한 예산을 들여 오랜 기간 축적해놓은 국가 핵심시설이다. 국가 경영에 필요한 국방, 외교, 행정의 모든 시스템과 노하우가 녹아 있다. 대통령 직무수행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시스템이다. 단 1초라도 작동이 멈춰선 안 된다.
충돌은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현재권력은 당선인이 대통령 집무를 시작하는 5월 10일까지 새 집무실에 이 시스템을 갖추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고, 미래권력은 국방부 청사에도 비슷한 시스템이 있어 안보 공백은 결코 없을 것이란 입장이다. 미래권력의 설명이 맞는다면 ‘속전속결식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반대한 전직 합참의장 11명의 공동입장문은 거짓이다.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 집무실 이전이 프로크루테스의 침대가 되어선 명분이 퇴색하고, 국민적 공감대도 얻기 어렵다. 시스템을 먼저 갖춰 놓고 집무실을 옮기는게 순리다. 집무실 이전이 촌각을 다툴 정도의 시급한 국정과제도 아니다. 집무실 이전이 블랙홀이 되어 민생은 뒷전으로 밀리고 말았다. 국민을 최우선하겠다는 당선인의 구상과도 배치된다.
건물에는 그 나름의 용도가 있다. 당선인이 집무실로 사용하려는 국방부 청사는 국방 분야에 특화된 공간이다. 대통령 집무 목적으로 지어진 건물이 아니다. 대통령의 공간은 나라를 대표하는 상징성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국방부 청사는 상징성이 약하다. 청와대가 비록 비효율적 구조이기는 하나 대외적으로 한국의 전통과 미를 알리는 효과가 있다.
현재권력의 제동으로 취임 전 집무실 이전은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당선인은 한사코 청와대엔 들어가지 않겠다고 한다. 이게 끝이 아니다. 5월 10일 청와대를 100% 국민에게 돌려주겠단다. 당선인의 확고한 의지를 알겠다. 그렇다고 새 집무실이 마련될 때까지 통의동 사무실을 쓰겠다는 건 수긍하기 어렵다. 당선인 스스로 재앙이라고 한 광화문 시대와 차이가 없다. 그리고 활용방안을 한 번쯤 생각해 보고 청와대 개방을 얘기했으면 한다. 덮어놓고 개방만 하면 끝인가. 이전비용 추계 혼선뿐 아니라 인수위 권한을 넘어선 과욕을 부리니 좋은 명분에도 불구하고 시비가 인다.
윤 당선인은 지난해 12월 캠프 내 새시대준비위원회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 임기 5년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5년짜리 대통령이 겁이 없다”고 문 대통령을 직격했었다. 이 말은 2027년 5월 9일까지 당선인에게도 내내 적용될 거다. 소통의 힘은 물리적 거리가 아닌 심리적 거리에서 나온다.
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