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일이 있다. 차가 막혔다. 바빠 죽겠다. 몸이 안 좋다. 직장인이 회사에서 흔히 하는 거짓말이다. 회사도 직장인에게 거짓말을 한다. 가족적 분위기, 스펙보다 인성, 자유로운 근무 환경. 회사의 거짓말에 속은 직장인은 걸핏하면 사표를 쓰겠다고 말하지만 이 역시 거짓말이다. 웬만하면 참고 꾸역꾸역 다닌다. 밥 한번 먹자는 거짓말로 서로를 위로하면서.
거짓말이라지만 악의는 없다. 위급한 처지를 모면하기 위한 궁여지책이거나 어색하고 난감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상투적 표현이다. 삼연 김창흡(1653~1722)이 소개한 조선시대 사람들의 상투적 언행이 50가지쯤 되는데, 지금과 별로 다르지 않다.
“사람을 만나면 말씀 많이 들었다고 한다.” 들어본 적 없어도 첫인사는 무조건 이것이다. “병문안 가서 환자에게 무엇을 먹고 싶은지 묻는다.” 아파서 못 먹는다. 평소에 잘해줘라. “가난한 사람을 돕지도 않으면서 어떻게 먹고사냐고 묻는다.” 묻지 말고 도와줘라. “상갓집 가서 장례 비용을 어떻게 마련할지 묻는다.” 거듭 말하지만 도와주지 않을 거면 그 입을 다물라. “부탁하면서 너만 믿는다고 말한다.” 너만 믿는다는 말, 부담스럽다. 부탁이 아니라 강요다. “남의 물건을 빌리면서 있는 거 다 안다고 말한다.” 이쯤 되면 강도나 다름없다.
“한번 찾아간다 하고서 가지 않는다.” 공수표 남발은 민족의 전통인가 보다. “걸핏하면 돈이 없다, 몸이 아프다 한다.” 하도 자주 듣는 이야기라 이제 아무도 귀담아듣지 않는다. 정말 가난한 사람과 아픈 사람만 난처해진다. “조금만 불리하면 운명을 탓한다.” 운명 탓이 아니라 내 탓이다. 운명을 탓하는 사람은 운명을 탓하는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다.
“남의 뒤를 캔다.” 남 말고 나한테 신경 쓰자. “남이 감추려는 일을 꼬치꼬치 캐묻는다.” 쓸데없는 호기심으로 남의 상처를 들쑤시지 마라. “길 가다 아는 사람 만나면 어디 가느냐고 묻는다.” 알아서 뭐 하게? “험담을 들으면 기어이 근원을 찾아낸다.” 범인을 찾아내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그 과정에서 험담은 더욱 널리 퍼진다.
김창흡이 소개한 50가지 상투적 언행은 지금도 유효하다. 이미 조선시대부터 구태의연한 관습이었다. 상대를 설득하거나 감동시키기는 부족하다. 그래도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구태의연한 관습은 오늘도 계속된다. 구태의연한 선거운동이 계속되는 것처럼.
대선 열기가 아직 식지도 않았는데 정치권은 다가온 지방선거로 벌써부터 분주하다. 결과는 알 수 없지만 과정은 눈에 선하다. 실현 가능성이 의심스러운 공약을 늘어놓은 선거공보물, 거리를 뒤덮은 현수막, 거들떠보는 사람도 없는데 연신 허리를 굽히는 선거운동원, 듣는 사람이 부끄러워지는 선거송. 시도 때도 없는 문자폭탄과 전화폭탄. 진영을 막론하고 천편일률적이다. 전략을 달리해야 할 군소 후보도 예외가 아니다. 반복 광고로 주문 전화를 유도하는 홈쇼핑식 선거운동이다.
나는 궁금하다. 이런 방법으로는 유권자를 설득할 수 없을 텐데, 구태의연한 선거운동을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홍보의 달인들이 선택한 방법이니 나름 이유가 있을 것이다. 유권자의 무의식에 후보의 존재를 각인시키려는 의도일까. 아니면 정치에 무관심한 유권자를 투표장에 나오게 하려는 의도일까. 유권자를 바보 취급하는 선거운동이라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뭔가 참신하고 생산적인 방법이 있지 않을까. ‘100일 민생 대장정’ ‘천리길 국토대종주’ 따위 이벤트성 선거운동을 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도 이제 식상하다. 효과도 의심스럽다. 그 사람들 결국 국민의 선택을 받지 못했으니까. 구태의연한 선거운동으로 지지를 호소하는 후보에게 새로운 정치를 기대할 수 있을까. 나 혼자만의 의문은 아닐 것이다.
장유승 단국대 동양학연구원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