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확진자 증가로 경구용 치료제 수요가 급증하자 정부가 이번 주부터 MSD(머크)사의 몰누피라비르(제품명 라게브리오)를 도입하기로 했다. 경쟁 제품보다 효능이 낮고 아직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승인도 남은 상황이지만, 먹는 코로나19 치료제 수급 현황을 고려할 때 차선책이란 평이 나온다.
전해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2차장은 21일 회의에서 “먹는 치료제 수요가 크게 확대된 상황을 고려해 4월 중 도입 예정인 9만5000명분의 치료제 이외에 추가로 조기 확보를 추진하고 있다”며 “머크사 치료제 10만명분을 금주부터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라게브리오는 아직 국내 사용 승인 전이다. 지난해 11월 17일 긴급사용승인 신청이 접수됐지만 넉 달 넘게 결론을 내지 못했고, 후발주자로 여겨졌던 화이자사의 팍스로비드가 지위를 선점했다.
발목을 잡은 것은 낮은 입원 예방 효과였다. 사측은 당초 임상 중간 결과에서 해당 약품의 중증화 예방 효과를 50%로 발표했으나 이후 최종 결과에선 30%로 낮췄다. 자체 임상에서 89%의 효과를 낸 것으로 알려진 팍스로비드에 크게 밀렸다. 임신부와 태아 등을 대상으로 안전성 우려가 제기되면서 미 식품의약국(FDA) 승인이 지연된 것도 영향을 미쳤다.
문제는 최근 닥친 오미크론 대유행 탓에 팍스로비드만으론 치료제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할 위기라는 데 있다.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전날까지 국내에서 8만7000여명에게 팍스로비드가 투약됐다. 재고는 7만6000명분으로 파악됐다. 정은경 방대본 본부장은 “현 추세로 2주 정도 사용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급한 대로 라게브리오를 사용해서라도 중증화를 줄여야 한다고 말한다. 입원 예방 효과는 떨어져도 팍스로비드의 병용 금기 약물을 복용하고 있는 확진자 등을 고려하면 유용한 선택지일 수 있다는 취지다. 김선빈 고대안암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입원을 30% 줄인다는 건 그만큼 병상을 아낄 수 있다는 의미”라며 “치료제 수급 상황을 고려할 때 (팍스로비드의) 대체 옵션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투약 대상은 팍스로비드처럼 고령·기저질환자 등 고위험군에 국한될 공산이 크다. 비용·효과를 평가한 국내외 전문가들의 연구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최근 한국역학회지에 게재된 조영지 보스턴대학병원 박사 등의 연구에 따르면 국내에서 고령층 확진자에게 라게브리오를 투약할 경우 7915달러(962만원)의 비용 투자로 1명의 중증화를 예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됐다. 같은 약을 일반 성인 확진자에게 처방하면 그 4배 가까운 2만8492달러(3463만원)가 들 것으로 예측됐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이날 임신부와 소아 대상 사용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라게브리오 긴급사용승인을 검토하고 있다며 늦어도 24일까진 승인 여부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내부적으론 치료제 공급 부족을 우려한 정부가 소관부처 검토가 끝나지도 않은 사항을 먼저 못 박았다며 곤혹스러워하는 기류도 일부 감지됐다.
송경모 기자 ss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