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가 사라졌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군의 최대 교전지인 남동부 도시 마리우폴을 탈출한 피란민들은 하나같이 자신이 알던 도시는 이미 사라지고 없다고 했다.
20일(현지시간) AP통신은 러시아의 무자비한 포위 공격에 함락 직전인 마리우폴에서 가까스로 서부 르비우로 가는 기차에 오른 피란민들의 이야기를 전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완전히 파괴된 옛 소련 레닌그라드나 2012년 이후 시리아 내전으로 황폐해진 알레포에 버금가는 참상이 빚어지고 있다는 증언이 잇따랐다.
한 피란민은 “전투는 모든 거리에서 일어났다. 모든 집이 표적이 됐고, 총성이 창문을 날려버렸다”고 말했다. 다른 피란민은 “거리에 시체가 빼곡했다”며 “이제 거기에 도시는 남아 있지 않다”고 전했다. 몇 주간 계속된 위협으로부터 벗어났다는 안도감도 잠시, 피란민들은 떠나온 고향을 생각하며 슬픔에 젖었다.
3주간 마리우폴 문화궁전 지하실에서 13살 아들과 머물렀다는 마리나 갈라는 마리우폴에 어머니와 조부모가 남아 있다고 했다. 그는 “그들이 어떤 상황인지 전혀 모른다”며 눈물을 흘렸다. 갈라는 “물도, 빛도, 가스도, 통신도 전혀 없었다”며 “녹은 눈을 마셨고, 폭격을 당하는 와중에도 야외에서 나무로 불을 때 음식을 조리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마리우폴 인근 도시 멜리토폴에서 마리우폴 주민들과 함께 탈출한 예레나 소우츄크는 짐도 거의 챙기지 못한 채 몸만 빠져나왔다고 전했다. 마리우폴에서 자동차로 탈출하는 이들을 본 적이 있다는 소우츄크는 “차만 봐도 마리우폴에서 나온 걸 알 수 있다”며 “마리우폴의 차들은 창문이 모두 깨진 상태였다”고 말했다.
인구 45만여명의 마리우폴은 우크라이나 해안 봉쇄를 노린 러시아군에 침공 초기부터 타깃이 되며 포위됐다. 러시아군 포위가 시작된 직후 사흘 동안 15만여명이 피란을 떠났고, 8일부터는 양국 합의하에 인도주의적 대피로가 설치됐지만 포격이 심해 14일에야 소수의 시민 철수가 이뤄졌다.
마리우폴에서만 최소 2500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마리우폴의 한 우크라이나 군인은 미국과 서방 국가를 향해 도와 달라는 절박한 메시지를 남겼다. 이 군인은 ‘마리우폴에서의 마지막 메시지’라는 제목의 영상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이름을 부르며 “당신들이 주기로 했던 무기와 탄약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며 “이제 전쟁을 끝내야 한다. 시민들을 구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러시아 총참모부(합참) 산하 지휘센터 국가국방관리센터 지휘관 미하일 미진체프는 마리우폴 우크라이나군에게 항복하라고 최후통첩을 했다. 이에 우크라이나 정부는 단호하게 거부 입장을 통보했다.
우크라이나 주요 도시에 대한 공격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러시아군이 21일 오전 우크라이나의 최대 물동항인 남서부 항구도시 오데사의 외곽 주거지역을 공격했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러시아군이 오데사 외곽을 공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전했다. 흑해에 인접한 오데사는 인구 100만 규모로 키이우(키예프), 하르키우에 이어 우크라이나에서 세번째로 큰 도시다. 걸작 영화 ‘전함 포템킨’ 촬영지로도 널리 알려진 곳이다. 통신은 또 러시아군이 이날 수도 키이우의 상업·주거지역에 포격을 가해 최소 8명이 숨졌다고 보도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