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에서 교육부 해체가 현실화될 수도 있다는 ‘충격과 공포’가 교육부를 휘감고 있습니다.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이 교육부 해체론자여서 조마조마해 하는 상황에서 인수위 과학기술교육분과 위원 명단에 교육 전문가가 빠지고 과학계 인사들이 채워지자 설마하던 우려가 현실이 되는 것 아닌지 긴장하는 모습입니다. 많은 이들이 교육이 과학에 흡수 통합되거나, 과학의 하위 개념 정도로 자리할 수 있다고 내다봅니다. 일각에선 “자업자득”이라며 통쾌하다는 반응도 나오지만, 학생들의 미래를 건 위험한 도박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무시하기 어렵습니다. ‘교육부 해체 실험’, 학생 입장에서 짚어봤습니다.
학생 입장에서 필요한 건 무엇일까요. 대학에 진학하거나 사회에 진출해 각자 자기 삶을 살아갈 때 도움이 될 역량을 키워주는 충실한 교육과정이 그 첫 번째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이끌어줄 능력과 열정을 갖춘 교사가 있어야겠죠. 학생과 교사가 만나 안전하고 쾌적하게 공부하며 건강한 몸과 마음을 기를 수 있는 적절한 공간도 필수적입니다. 학생의 노력이 정당하게 평가받을 수 있는 공정한 규칙 역시 뒷받침돼야 합니다. 열악한 환경에 놓인 학생들이 꿈을 포기하지 않도록 하는 교육 복지 역시 빼놓기 어렵습니다.
위 다섯 가지가 잘 작동한다면 누가 교육 행정을 하든 상관없을 것입니다. 초점은 다시 어떤 형태의 정부 조직이 이를 가장 잘 수행할 수 있느냐로 모아져야 합니다. 관심도 높은 대학입시 제도를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대입제도는 초·중등교육과 고등교육의 접점에 있습니다. 양쪽 영역에 지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그래서 대입 제도 설계 시 고려해야 할 요소가 참으로 많습니다. 일단 교육과정과 조화를 이뤄야 합니다. 중·고교는 대학들의 선발 방식에 큰 영향을 받습니다. 예컨대 수능의 영향력이 강화되면 고교는 수능 중심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속칭 ‘1타’ 강사들의 인터넷 강의나 EBS 교재 공부하는 곳으로 변질되기 십상입니다. 수능과 무관한 과목을 학교가 강요하면 학생·학부모 저항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학교 교육과정과 대입 제도가 따로 놀면 사교육비는 필연적으로 뜁니다. 문재인정부의 패착 중 하나였죠. 정권 차원에서 교육과정에 대한 고려 없이 대입 제도를 5년 내내 들쑤셔놨으니 사교육비가 안 오를 수 없었죠. 부유층이야 상관없지만 공교육 의존도가 높은 서민 가정은 고통스럽습니다. 대입제도와 교육과정, 교원 정책은 한 묶음으로 봐야 합니다.
대학 정책과도 엮여 있습니다. 학생 충원 걱정이 없는 서울·수도권 대학들은 정부 간섭을 받지 않고 마음껏 학생을 선발하고 싶어 합니다. 학생부종합전형이든 대학별고사든 ‘우리 인재 우리가 뽑아 기른다’는 생각이 강합니다. 지금도 법적으로는 대학이 학생 선발권을 갖습니다. 교육부는 재정지원 사업 등으로 대입 정책을 컨트롤합니다. 대학들이 대학 돈줄과 관리감독권한을 갖고 있는 교육부와 적절히 타협하며 욕망을 억누르는 구도라고 보면 정확할 겁니다.
윤 당선인의 정시 확대 공약은 기본적으로 대학 자율을 억누르는 정책입니다. 학생에게 수능 점수에 따라 대학 입학 티켓을 주는 방식이니 대학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죠. 대입 전형 단순화 공약 역시 대학 자율성을 침해합니다. 두 정책 모두 주요 대학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교육부는 ‘고교교육 기여대학 사업’이란 재정 지원 사업과 교육부와의 관계를 지렛대 삼아 대학들을 제어해왔습니다. 요약하면 교육부는 초·중등 교육과정을 수립하고 이에 맞는 대입 제도를 설계한 뒤 대학들에게 이를 적용하도록 으르고 달래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교육부는 공중분해 위기에 직면한 듯합니다. 이 경우 유치원과 초·중등 학교 업무는 시·도교육청으로 이관될 듯합니다.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 당선되는 교육감들 손에 맡기는 거죠. 국가교육과정과 대학입시, 교원정책 등은 오는 7월 출범하는 국가교육위원회로 넘어갈 예정입니다. 대학 업무는 연구기능이나 산학협력 등 분야별로 다른 정부 부처나 총리실 등으로 옮겨질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전문대 업무는 폴리텍대학을 관장하는 고용노동부 쪽이란 얘기도 있죠. 교육부 조직은 과학기술 파트에 흡수돼 명맥만 유지하거나 아예 녹아 없어질 수도 있겠습니다.
중요한 건 학생입니다. 새 정부 앞에 놓인 교육 현안은 녹록하지 않습니다. 코로나19 여파에 따른 학력 저하와 학력 격차 문제도 있지만 무엇보다 학생 정신건강 문제가 심각합니다. 코로나 이전인 2019년에는 학생 10만명당 2.5명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지만 지난해에는 3.6명으로 크게 증가했습니다. 정신적으로 고통 받는 학생이 늘어나고 있다는 매우 심각한 시그널입니다. ‘코로나 블루’라며 상담 횟수 조금 늘려주는 걸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입시나 교우 관계, 학교폭력, 가정 문제 등에서 종합적인 처방이 나와야 합니다.
부동산 못지않게 폭등한 사교육비 역시 간과하기 어렵습니다. 아이 낳길 꺼리는 풍조를 강화하고 학부모들의 노후 준비 여력을 갉아먹어 노인 빈곤 문제를 초래하는 요인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입시 공정성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사교육 의존도를 낮추려면 공교육 경쟁력 강화가 필요하므로 교원 정책이나 교육시설 개선 역시 빼놓을 수 없겠죠. 어느 한 부분만 손대서는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많은 교육 난제들이 그렇습니다. 오케스트라 지휘자 같은 역할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교육부가 지금까지 미흡했다면 방식을 바꿔서라도 그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교육 실험이 될 것입니다. 결국 피해는 학생과 학부모에게 돌아가겠죠. 윤석열 당선인의 대선 때 구호 “좋아, 빠르게 가”처럼 밀어붙일 사안은 아닌 것입니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