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가 끝난 지 열흘이 넘었건만 정권을 인수인계해야 할 신구 권력은 만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정권교체기에 신구 권력 간 불편한 관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서로가 역지사지(易地思之)하면 충분히 이해와 양보가 가능할 것인데도 전혀 그럴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그대로 둔다면 정권교체기 공공기관이나 정부기관의 인사권과 관련한 갈등은 무한 반복될 수밖에 없기에 이제는 제도화를 통해 이를 막아야 한다.
과거에는 임기를 6개월 정도 남긴 시점부터는 임기가 보장된 자리나 공공기관장 인사를 하지 않고 대행체제를 유지하도록 함으로써 다음 정부를 배려하는 것이 예의이자 관행이었다. 권력교체기에 큰 갈등 없이 정부 이양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이 관행이 깨진 것은 노무현정부 말기 정연주 KBS 사장을 재임용하면서부터다. 이명박정부가 들어서서는 그를 사실상 강제로 퇴임시켰고, 수년 후 대법원은 정 사장 해임이 무효라고 판결했다.
이후에도 정권교체기에 공공기관장과 임원 자리를 둘러싼 갈등은 있었다. 그러나 정권이 교체되면 정치적으로 임용된 공공기관장이나 임원들이 스스로 사퇴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문제가 크게 부각되지는 않았다. 인사 문제는 주로 KBS MBC 등 공영방송 사장을 친정부 인사로 교체하는 과정에서 나타났는데 언론 방송이 정권이나 정책 홍보에 필수적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경질 대상인 공공기관 인사들의 리스트를 작성해 강제 퇴임시켰다는 혐의로 구속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으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이 사건은 아이러니하게도 직전 정권에서 임용한 공공기관 임원들의 임기를 사실상 보장하는 효과를 가져와 임기 말 문재인정부에서는 낙하산 보은 인사를 계속 실시하고 있다.
예의와 도리, 관행으로 서로 양보하고 타협하지 못한다면 국민을 위해 이제는 제도화가 필요하다. 공공기관의 임직원 자리를 정권 획득의 부산물로 여기는 생각부터 바꿔야 하는데, 민주적 정치 과정에서 선거는 필수적이고 선거에 도움을 준 사람들이 한 자리를 바라는 것을 모두 배제하기는 어렵다. 한 가지 대안은 반드시 전문성이 객관적으로 입증돼야만 하는 자리와 전문성보다 정권에의 충성도가 필요한 자리를 분리해 공공기관 인사 원칙을 이원화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전자에 대해서는 정부나 정치권이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하고 최고 수준의 전문가를 임용한다. 미국식 플럼북을 작성해 주요 자리에 필요한 능력과 자격 조건을 명시하고, 이를 반드시 지키도록 공공기관 인사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야 한다. 이런 자리는 정권교체와 상관없이 임기가 보장되도록 할 수 있다. 반면 정치적으로 임용된 자리는 어차피 낙하산이니 굳이 공개경쟁을 할 것 없이 그냥 임용하고 정권교체와 함께 일괄 사표를 제출토록 제도화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중앙정부의 공공기관뿐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에 존재하는 1000개가 넘는 공공기관도 마찬가지다. 지방선거를 앞둔 현시점에서 주요 지방 공공기관 임원의 자격 및 능력 조건을 명확히 검증해 단체장들이 자의적으로 임명하지 못하는 자리와 정치적으로 낙하산 임명이 가능한 자리로 이원화하는 것을 입법화해야 한다.
국회의 의석 분포가 더불어민주당의 절대 우위이기 때문에 입법화에는 반드시 민주당의 동의가 필요하다. 만일 현재의 이해관계에 매몰된다면 앞으로 여야가 바뀌었을 때 반드시 후회할 것이다. 그때 가서 다시 법률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개정할 것인가. 인간처세(人間處世) 견리사의(見利思義)를 명심해야 할 것이다.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