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에너지 시장이 급속히 위기에 빠져들고 있다. 최근 석유 가격이 배럴당 127달러(두바이유 기준)까지 상승해 2008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고, 천연가스와 유연탄은 이미 역대 최고치를 경신한 후 급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주요 원인으로는 코로나19 이후 세계 경제 회복세로 인한 에너지 수요 증가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이 지목되고 있다.
이 같은 세계적인 에너지 위기는 대부분의 에너지원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 경제를 강타하고 있다. 불확실성이 큰 에너지 위기 상황이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금융위기와 같은 대위기로 확산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가 힘을 모아 현명하게 대처해야 할 시점이다. 우리가 취해야 할 조치들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주요 선진국이 어떻게 에너지 위기에 대처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그들의 조치는 대체적으로 3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는 직격탄을 맞은 전력 분야에 연료비 원가 상승을 반영해 전기료를 대폭 인상했다. 51.7%를 인상한 스페인을 필두로 이탈리아(29.8%) 영국(21.2%) 일본(8.5%) 등이 전기료를 큰 폭으로 올렸다. 파산에 직면한 민간 소매 전력회사를 국영화한 예도 있다. 영국의 7번째 대형 소매 전력회사인 벌브사가 4배 이상 오른 도매 전기요금을 소매요금에 반영하지 못해 파산했는데, 이로 인한 에너지 수급체계의 붕괴를 막기 위해 영국 정부는 2조7000억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둘째, 여러 사정으로 전기료를 충분히 인상하지 못한 나라에서는 정부에서 자금을 직접 지원하거나 손실액을 보전하는 방법으로 어려움에 처한 전력회사를 지원하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전력회사인 EDF에 약 2조8000억원을 2년간 지원키로 했고, 노르웨이 정부는 겨울철 손실액의 80% 수준인 약 1조1000억원을 전력회사에 지원했다.
셋째,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가장 심하게 고통받고 있는 개별 소비자와 취약계층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움직임도 활발하다. 영국은 전 국민에게 주민세 약 24만원씩을 감면해 주는 한편 약 2332억원의 기금을 조성해 저소득층의 에너지 요금을 지원하고 있다. 스웨덴 또한 겨울철 에너지 비용 지출이 많은 가구의 부담을 완화해 주기 위해 3개월간 가구당 월 25만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같이 나라마다 차이는 있지만 에너지 위기가 전반적인 경제 위기로 확산되는 것을 막고 국민 생활을 안정시키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우리나라 또한 석유, 석탄, 가스 등 연료비의 급격한 상승으로 적정 수준의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와 함께 세제 감면과 재정 지원, 그리고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을 확대함으로써 에너지 위기로 흔들리고 있는 국민 개개인의 삶과 국가 경제의 안정을 도모해 나가야 할 것이다.
양봉렬 전 주말레이시아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