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가뒷담] “저러다 싹 나겠네”… 집회 후 방치한 4억대 쌀 어쩌나

입력 2022-03-21 04:06

요즘 농림축산식품부가 위치한 정부세종청사 5동 주변에는 쌀이 가득하다. 정확히는 벼 껍질 제거 작업인 도정을 거치지 않은 벼 이삭이 담긴 1t 포대가 잔뜩 늘어서 있다. 그 가치가 시세로 4억원을 넘는다고 한다. 지난달 14일 농민단체들이 집회를 열며 가져다 놓은 이 포대들은 1개월이 넘도록 방치된 상태다. 비가 내려도 벼 이삭이 물에 젖을까 걱정하는 이들은 찾아볼 수 없다. 농식품부를 오가는 이들 사이에서는 “저러다 싹 나겠네”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온다.

농민단체가 귀한 쌀을 헌신짝마냥 길거리에 내팽겨친 상황이 발생한 원인은 쌀값 때문이다. 지난해 풍년으로 쌀값이 떨어진데 대해 정부가 수매가를 올리라는 일종의 시위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지난 18일 기준 쌀 소비자 판매 가격은 가마니(80㎏) 당 평균 20만9636원으로 지난해 같은 날(23만9244원)과 비교해 3만원 가까이 떨어졌다.

농식품부는 곤혹스러워 하고있다. 시장에 개입해 쌀값을 올리자니 코로나19사태와 우크라이나 전쟁 영향으로 수직상승한 물가가 부담스럽다. 과거에 비해 쌀값이 여전히 높다는 인식도 있다. 문재인정부 출범 직전인 2017년 3월만 해도 쌀 소매 가격은 가마니 당 14만원대에 불과했다. 그 때와 비교하면 지금 쌀값은 여전히 높다.

추가 시장격리와 관련한 요구 사항이 시장 왜곡을 부를 수 있다는 점도 양측의 대화를 어렵게 만든다. 농식품부는 지난달 쌀 14만5000t을 1차 시장격리하면서 도정 전 쌀을 40㎏ 당 6만3000~4000원대에 매입했다. 공개경쟁입찰을 거치며 시장가격이 반영됐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20일 “농민단체가 40㎏ 당 6만9000원에 사달라고 하는데 이는 시장가격보다 높은 상황”이라면서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